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Feb 18. 2022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위한 변명

한라산 폭주 사건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절친들과의 술자리를 할 때 종종 소환되는 미스터리가 있다. 두 명의 친구와 하루라도 관절 생생할 때 실행해 보자며 한라산에 오르기로 의기투합했다. 불도저 같은 실행력으로 며칠 후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제주에 도착했다. 공포영화의 뻔한 클리셰처럼 주인공들의 행복이 최고점에 닿는다는 건 곧 불행이 시작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주체할 수 없는 ‘신남’이 ‘화남’으로 변신한 건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인생에 두 번은 없을 도전을 위해 몸과 마음의 단단한 다짐이 필요했다. 제주 바다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 거대한 해물탕을 앞에 두고 결의를 다지는 술잔이 오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 기분은 급속도로 엉망이 됐고, 술자리의 끝에는 시베리아급 냉기가 해물탕이 보글보글 끓던 술상을 덮쳤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친구들은 이유를 찾기 위해 고심했다. 내가 친구들의 입장이라면 답답이도 세상에 이런 답답이가 없다. 사이다 없이 밤고구마 100개를 목에 쑤셔 넣은 듯 갑갑한 상황. 두 친구 사이에 소리 없는 눈빛이 오갔고, 내게도 이유를 물었지만 그날의 난 답하지 못했다. (후에 들었지만) 친구들은 숙소로 돌아가 잠들 때까지도 다음날 한라산 등반을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다음 날 아침, 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보통의 하루를 시작했고 우리는 지옥의 한라산 등반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물론 이 이해 안 되는 상황과 내 눈치를 보느라 친구들은 나보다 100배는 더 피곤했겠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명 한라산 폭발의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다. 그 이유를 친구들도 모르고 당사자인 나도 모른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만큼이나 이 일화가 술자리의 안줏거리로 ‘또’ 올라올 때마다 머릿속 시계를 되돌려 그날, 내가 화난 이유를 찾아보려 안간힘을 쓴다. 내 머릿속에는 그날 먹었던 칼칼했던 해물탕의 맛, 결전의 날을 위해 과음하지 말자며 소주 대신 제주 막걸리를 택한 그 사소한 것까지 기억난다. 하지만 정작 화난 이유 부분에서는 새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은 것처럼 텅 비어 있다.      


이건 아마도 선택적 기억상실증일 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기억이기에 내가 애써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을지 모른다. 추측하건대 그날 난 아마 난 뭔가 핀트가 나갔을 거다. 그 핀트가 나간 상황과 이유를 바로 친구들에게 설명했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술자리의 웃음 섞인 안줏거리가 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덜 자라서 왜 내가 화가 났는지, 그걸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지 방법을 몰랐을 인간이다. 내가 (고작 그따위 거에) 화가 났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부끄러웠을 거다. 들불처럼 번지는 화도 조절하지 못한 주제에 ‘쿨’은 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난 애초에 쿨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좀 요령 있게 제멋대로 날 선 감정을 잘 숨기면 될 텐데 그걸 잘 숨기지도 못하는 얕은 인간이다. 화가 났다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데 아닌 척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마음의 셔터를 내리는 어리석은 방법을 택한 거다. 내 인생의 흑역사가 하나 더 적립됐다. 그렇게 때를 놓친 사과는 결국 돌아갈 곳을 잃었다. 세상을 뜨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한 많은 귀신처럼 내 인생을 둥둥 떠다닌다.      


선택적 기억상실증이라는 단어로 그날의 사건을 덮어 버리기에 난 충분히 비겁했다. 친구들이 이불 킥을 부르는 제주 폭주 사건을 기억을 소환할 때마다 다짐한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순간의 창피함을 피하려다가 평생 발목 잡을 흑역사를 만들지 말자. 조금 더 내 감정에 솔직하고, 그걸 드러나는 일에 겁내지 말자. 뻔뻔해지자. 울퉁불퉁 못생긴 감정도 외면하지 말고 기꺼이 환영해 주자.


성장은 위가 아니라 아래로 깊어지는 일이라는 것,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모른 채 숲을 헤맨다.
성장의 비밀은 뿌리에 있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모월 모일> 중       


속마음 꺼내놓기 올림픽이 있다면 난 여전히 메달권과는 멀다. 평균점에 비하면 지금도 썩 능수능란한 건 아니지만 세상을 향해 성벽을 쌓지도, 셔터를 쾅 내리지도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날의 나보다 아래로 깊어지는 중이다. 하늘에 닿을 만큼 위로 위로 자라나는 최우선의 목표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 어떤 폭풍우에도 흔들림 없는 우람한 줄기와 크고 넓은 그늘을 만들 가지를 펼치는 게 중요한 줄 알았다. 하지만 <한라산 대폭발 사건>이 소환될 때마다 뿌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먼저 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깊고 넓게 뻗어 땅을 움켜 줘야 비로소 나무는 우뚝 선다는 진리를 술과 함께 꿀꺽 삼킨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제주에는 해장국집이 넘쳐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