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대도식당> 방문기
음식을 먹는 시간보다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 음식 사진을 찍는 시간이 더 긴 식당에는 좀처럼 발길이 가지 않는다. 감성 사진으로 도배할 SNS를 하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전에 지치는 그 상황들이 싫었다. 그래서 ‘SNS 맛집’이라는 딱지가 붙은 식당은 일단 거르고 본다.
연고는 없지만 내가 정한 바다 건너 마음의 고향, 제주 서귀포에도 보기 좋고 사진빨 서는 음식들로 중무장한 맛집들이 넘쳐난다. 시끌벅적한 그곳들을 뒤로하고, 한적한 서귀포항으로 향한다. 반짝이는 관광객보다는 허름한 차림으로 바닷일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오가는 그곳 골목 구석에 오래된 복국집이 있다. <대도식당>. 도시에서는 비싼 한우를 파는 식당과 같은 이름이다.
몇 번 그 길을 지나칠 때마다 보면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겹겹이 바른 시트지 너머로 불 꺼진 허름한 공간이 보였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전성기가 지나가 버리고 폐업한 식당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아침 일찍, 새섬으로 슬렁슬렁 산책을 갔다가 평소 가던 큰길 말고 골목을 돌아 걷던 중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한 가게를 봤다. 영업을 하긴 하는구나. 지나가며 슬쩍 검색했더니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었다. 대표 메뉴는 김치 복국. 오전 8시부터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만 영업한다. 새벽 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뱃사람들이 해장을 하는 곳이다. 그러니 내가 평소 지나던 오후 늦게나 저녁 시간에는 닫혀 있는 게 당연했다.
여행 동지들과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11시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리가 없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딱 한자리가 남아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점심시간 전인데도.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앉자마자 김치 복국을 인원수대로 주문했다. 그제야 다시 느긋하게 메뉴판을 보다 복의 원산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밀복 : 동해안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여행 동지들과 얘기했다.
우리 웃긴다. 제주도까지 와서 왜 동해에서 잡힌 밀복으로 만든
김치 복국을 먹으러 왔을까?
그러게나 말이야.
대체 뭐가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하다.
잠시 후 커다란 냄비가 테이블 버너 위에 올라왔다. 그 안에는 콩나물과 밀복이 든 옅은 김치 국물 색의 육수가 자박하게 담겨 있다. 짙은 초록색 미나리를 방석 삼아 깔고 앉은 연한 핑크색 복어의 간(애). 그게 살짝 익으면 바로 먹어도 된다는 팁을 남기며 직원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보글보글 끓으니 김치 냄새가 폴폴 올라온다. 우리의 기대도 퐁퐁 차오른다. 애간장을 다 태울만큼의 시간이 참지 못하고 우르르 한 번 끓었을 때, 일단 국물을 떠서 한입 먹었다. 잉? 이거 엄마가 아침에 끓여주는 김치 콩나물국인데? 이걸 먹으러 여기까지 온다고? 의아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반항심을 잠재우며 일단 먹어 보기로 한다. 국물이 계속 끓고 한 숟갈, 한 숟갈, 냄비에 국물이 사라질수록 왜 여기가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지 서서히 느끼게 됐다.
밀복, 김치, 콩나물, 미나리를 제외하면 딱히 들어간 것도 없는 심플한 구성.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국물이다. 심심한데 감칠맛 있고, 뜨거운데 시원하다. 맵지도, 짜지도, 시지도, 쓰지도, 달지도 않은 오각형의 정중앙에 서 있는 맛. 화장으로 치자면 투명 메이크업? 패션 스타일로 치자면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스타일이다. 불닭 맛 같은 자극적인 세상에 이렇게 청초하고 순결한 해장국이라니. 전날 술도 안 먹었는데 천 년 묵은 숙취까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간이 텁텁한 오일 클렌징 말고, 맑은 물 세수한 느낌이다.
부족한 게 없나 자꾸 돌아보게 된다. 뭔가 더해야 한다는 강박이 채찍이 되어 몸을 채근한다. 빈틈은 여유가 아니라 허술 또는 준비 부족이라고 착각했다. 서귀포 <대도식당>의 김치 복국은 냄비 안에서 팔팔 끓으며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본 재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강박에 휩싸여 더하려고 하지 말고, 본질에 집중하고 또 충실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