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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22. 2022

넌 사기꾼 해도 잘했을 거 같아

나를 일으켜 줄 삐딱한 결론



넌 사기꾼 해도 잘했을 거 같아     

절친들과 수다를 떨던 중 내 앞에 이 말이 툭 하고 떨어졌다. 덩그러니 던져진 문장 하나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겨났다. 여러 사람 앞에 서면 핸드폰 진동 오듯 벌벌 떠는 내가? 울렁증 때문에 전화보다 톡이나 문자가 편한 내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무는 내가? 물음표 가득한 내 얼굴을 본 상대는 천천히 그 이유를 설명했다.

     

희한하게 네가 말하는 건 믿게 돼.

나중에 찾아보면 틀린 게 많은데도 믿게 된단 말이야.

세상 사람들이 얘 말 안에

얼마나 구멍이 숭숭 뚫렸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캐릭터가 중요해.      


그 이유를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이 말 안에는 신뢰가 간다는 말과 허점이 많다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좋게 말하면 구멍을 잘 숨기고 산다는 뜻이고, 나쁘게 말하면 허울이 좋다는 뜻이었다. 사기꾼을 해도 될 정도로 내 말에 믿음이 간다니... 의외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을 만난다. 듣고만 있어도 귀가 녹고, 할머니 고쟁이 속 쌈짓돈까지 꺼내게 만들고, 불가능한 일도 어떻게든 해내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과 만날 때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태생이 간이 자그맣고, 자기 확신이 없는 내가 보기에 그들이 내뱉은 말 한마디는 할 수만 있다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싶을 만큼 예술이다. 저 정도의 언변을 가졌다면 낯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했을 텐데 싶어 부러움에 몸서리친다.      


솔직히 난 뛰어난 언변과는 거리가 멀다. 지식의 깊이나 넓이가 대단하지 못하다. 그러니 얕은 상식으로 겨우겨우 구멍을 메꾸며 살고 있다.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허튼소리를 내뱉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철저한 자기 검열을 한 끝에 신중하게 입을 연다. 말의 양보다는 질에 중점을 두고 산다. 타석에 서면 무작정 배트를 휘두르는 타자 스타일이 아니라, 공의 구질과 투수의 표정을 살피며 신중하게 살펴서 확신이 서면 단 한 번의 홈런을 노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언뜻 보기에는 뭔가 ‘믿음직스러운’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어디 완전무결한 사람이 있을까? 논리의 허점이나 말의 구멍, 정보의 오류가 존재한다. 왜냐? 사람이니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니까. 성인군자도 아니고 아이큐 300의 천재도 아니니 그런 결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태생적 결점들을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캐릭터 안에 잘 숨기고 살았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만난 사람들은 나의 본모습을 캐치해 내고야 만다.  

     

사기꾼 해도 잘했겠다는 말. 이 말을 듣고 실망 좀 시키고 살아야겠다는 삐딱한 결론에 닿았다. 애초에 불가능한 ‘완벽’이란 이름의 벽을 치고 사느라 애쓰지 말고, 구멍을 드러내는데 부끄러워하지 말고, 허점을 들키면 빛보다 빠르게 인정하며 사는 게 나를 덜 괴롭히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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