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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04. 2022

비 오는 날 명동에 가면 칼국수를 먹어야지

<명동 교자> 방문기


때가 묻어야 유독 맛있어지는 음식이 있다. 물놀이 후 체온이 빼앗겨 입술이 보라색이 됐을 ‘때‘ 먹는 뜨끈한 컵라면이 그렇고, 한여름 땀에 절어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벌컥 열어 달아오른 얼굴을 냉기로 식힐 ’때‘ 함께 마시는 시원 달달한 토마토 설탕 절임 국물이 그렇다. 어떤 순간의 온도와 습도, 공기의 흐름이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얼마만의 명동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미 뉴스를 통해 예전의 명동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는 처음이었다. 쏟아지는 장마 폭우가 아니었어도 명동은 텅텅 비어 있었다. 언제 가도 사람으로 넘쳐났던 명동은 코로나19 이후 유령도시처럼 변했다. 사람의 발길은 끊겼고, 영혼 없는 목소리로 호객하던 로드샵 화장품 가게의 직원들도, 외국인 큰손들에 비해 소비력 떨어지는 내국인은 은은하게 무관심했던 상인들도 없다.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만큼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로 가득한 명동은 이제 없다. 있는 거라고는 <임대문의> 종이가 나붙은 텅 빈 가게들뿐. 수십 년 동안 명동을 지켜 온 터줏대감급 가게들도 팬데믹 여파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인적도, 관심도 썰물처럼 빠져나간 폐허가 된 명동에서 변함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있었다. 하염없이 비가 쏟아졌고, 멀리 갈 순 없었고, 그렇게 내 시야에 <명동 교자>가 들어왔다. 1966년 개업한 그곳은 쉴 줄 모르는 기계처럼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점심시간 피크가 끝난 후여서 대기 줄은 다행히 없었다. 마늘 냄새를 폴폴 풍기며 이를 쑤시며 나오는 사람들을 헤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소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빽빽하게 들어찬 테이블은 흡사 독서실 같다. 사람들은 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처럼 열심히 자기 그릇에 코를 박고 먹기에 열중이다. 그들이 참고서처럼 독파하고 있는 건 열에 일곱은 칼국수, 그 외에 비빔국수와 콩국수가 뒤를 이었다.      


오늘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공기 흐름의 정답은 칼국수였다. <명동 교자>의 대표 메뉴 칼국수와 영혼의 짝꿍, 마늘을 쏟아부은 듯한 겉절이와 함께라면 장마의 지루함도 날릴 수 있을 거 같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카드를 내밀며 칼국수를 주문했다. 선불이다. 결제 승인 문자와 함께 패스트푸드보다 빠른 속도로 칼국수가 내 앞에 당도했다.      


진한 닭고기 육수에 면과 양파, 애호박, 목이버섯이 들어간 채소볶음이 넉넉하게 들어간 그릇. 가운데 볶은 고기 고명을 중심으로 태극기의 네 방향 궤처럼 만두 4알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동그란 만두가 아니라 얇은 피로 만든 날개가 넓은 완당 스타일의 만두다. 젓가락을 넣어 국수를 휘젓고, 일단 국물부터 한 수저 떠 넣었다. 채소를 강한 불에 볶으며 나왔을 불맛이 제일 먼저 혀에 닿았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끓였는지 가늠도 안 될 감칠맛 넘치는 육수의 진한 맛이 입안에 휘몰아쳤다. 며칠째 이어진 장마로 눅눅했던 기분에 보일러라도 돌린 듯 뜨끈함이 차올랐다. 이어서 면발. 덜 익지도, 푹 익지도 않은 면발은 국물을 잔뜩 머금었다. 비단결처럼 매끈한 면발이 입안으로 빨려 들어갈 때, 날 섰던 신경도 매끈해지는 기분이었다. 먹을수록 면의 전분이 녹아 한층 점도가 높아진 국물은 수프를 먹는 것처럼 뭉근하게 몸을 덥혔다.


순정을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 영혼의 짝꿍을 소환할 차례다. 새빨간 옷을 입은 겉절이. 이미 수없이 먹었지만 처음 먹을 때는 늘 예상치를 뛰어넘은 마늘 맛 공격에 당황한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알싸한 마늘 맛은 언제나 내 기대치를 뛰어넘는다. 입 안이 얼얼해질 때쯤, 급히 칼국수 국물로 진화에 나선다. 솔직히 마늘 겉절이는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시그니쳐니 순순히 마늘 공격을 받아들인다. 매번 녹다운당하면서도 후퇴라는 것을 모른다. 다만 기계처럼 다가와 ’겉절이 추가요?’를 묻는 직원의 물음에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한다. 내 몫의 겉절이만 알뜰하게 다 먹고 더는 남기지 않는 게 그게 귀한 겉절이를 향한 나의 마지막 배려다.      


칼국수가 나오는 속도에 비례해 먹는 속도도 덩달아 급해진다. 테이블 회전율이 높기로는 아마 명동에서 맥도널드만큼 빠를 <명동 교자>. 대기 줄이 없어도 느긋하게 수다를 떨 분위기는 아니다. 칼국수가 바닥을 보이면 물로 입을 헹군 후 일찌감치 직원이 놓고 간 자일리톨 껌을 씹으며 가게를 나온다. 매번 같은 패턴이다. ‘이번이 마지막 마늘 김치다.’ 라고 혼자 다짐하지만 명동에 가면, 비 오는 명동에 가면 저절로 발이 <명동 교자> 앞에 멈춘다. 명동에 비가 올 때 일어나는 마법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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