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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Dec 21. 2022

어차피 대상은 남의 일?

[제10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어쩌다 대상, 비하인드 스토리


  동안 시상식 준비로 연말을 하얗게 불태우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1년을 결산하며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을 빛나게 만들어 주는 , 그게  업무였다. 난생처음 상을 받는 신인도, 트로피로 벽을 도배하고도 남는 관록의 스타도  앞에서는 똑같았다. 눈물이 범벅이  채로 트로피를 거머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이어가던 이들을 무대 뒤에서 훔쳐보며 궁금했다. 판을 깔아주는 스태프 말고, 무대 위에서 오롯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수상자의 기분은 어떤 걸까? 휘두르면 흉기가 되고도 남을 사이즈의  쇳덩어리가 뭐라고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걸까? 아무리 짐작해 봐도   없었다.  인생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내가 그런 무대의 주인공이  일은 없다고 단언했으니까. 그러던 내가 2022년이 마무리되는 이때 어쩌다 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악착같이 달려들었을 때는 반응도 없더니, 어차피 대상은 남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별생각 없이  던지니 세상에나... 대상 수상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연말 특유의 어수선함이 잔잔히 내려앉은 12월 어느 평일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출간 및 기고 목적]이라기에 아직 야근 중인 어느 K-직장인이 보낸 거겠구나 싶어 짠한 마음을 가득 안고 메일을 열었다. 한 줄 한 줄 메일을 읽어 내려갈수록 볼에 열기가 오르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거울로 확인하지 않아도 불타는 고구마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메일의 내용은 지난가을, 응모했던 [제10회 브런치 북 프로젝트 공모전]의 수상자에 선정됐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대상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확신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당선이 될 거라는 '기대' 보다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응모작 머릿수나 채우는 들러리 같은 존재,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을 깨 부수는 말들이 메일에 가득했다. 여러 절차가 남아 있기에 아직 대상이 아니라 ‘대상 후보작’이란 안전벨트 같은 덧말이 붙어 있었다. 뭐가 됐든 좋았다. 8천여 편의 응모작 중 하나에서 신분 상승해 대상 후보작이 됐다는 건 대상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뜻이니까.       


얼떨떨한 기분으로 메일을 닫으며 생각했다. '당근 마켓을 뒤져 확성기라도 사야 하나?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하니까. 아니 휴전선에 튀어 가서 대북 확성기라도 훔쳐 올까?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대상 후보작 선정 소식을 떠벌려야 하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식 발표 당일까지는 비밀을 유지해달라는 당부가 설레발의 발목을 붙잡았다. 발표날까지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입에 테이프를 붙인 채 전기의자에 꽁꽁 묶여 발버둥 치는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들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받기를 인생 최고의 낙으로 여길 만큼 인정 욕구가 차고 넘치는 내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니, 우쭈쭈쭈를 받을 수 없다니, 괴로웠다. 매년 연말이면 빛의 속도로 시간이 간다고 느끼곤 했는데 올해만큼은 달랐다. 시베리아 혹한에 세상 모든 시계가 얼어 버린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미쳤다. 나를 왜?
브런치가 나를 왜?
문학동네가 나를 왜?
왜? 왜? 왜? 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무도 듣지 못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길을 걷다가도 마스크 속으로 음소거 상태로 포효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반실성을 넘어 100% 돌+I 상태. 앞서 수상한 대상 선배님들은 어쩌면 글쓰기보다 더 괴로웠을 이 침묵의 시간을 대체 어떻게 견딘 걸까? 이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도 대상 수상자의 덕목인 걸까?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경험하고 나니 선배 대상 수상자들을 향해 무릎이 절로 꿇어졌다.       


두 번째 도전이었다. 6년 전 처음 브런치에 발을 들인 건 분명 책을 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출간 제안을 받고 책을 내는 일은 로또 당첨 급의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기에, 나 같은 무명작가는 오히려 공모전 쪽이 더 가능성 높다고 생각했다. 초반 몇 년 공모전은 내가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해 응모하지 않았다. 나름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던 몇 해 전 칼을 갈고 처음 도전했다. 돌아온 결과는 차가운 탈락. 두 번째 도전을 하기 전, 운 좋게 출판사의 제안으로 첫 책을 냈고 다음 책까지 출간했다. 그 이후에는 도전하지 않았다. 이미 종이책 두 권이라는 결과물이 있으니, 공모전은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재능 있는 출간 작가 지망생들에게 더 필요한 기회라는 생각에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지난여름 끝, 올해도 어김없이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가 열린다는 공지가 떴다. 브런치를 통해 출간 기회를 얻은 나를 보고, 몇몇 지인들도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 동지가 된 친구들 사이에 공모전 응모 여부가 심심치 않게 수다 주제로 오갔다. 참가 여부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만 해도 별생각 없었다. 그러다 오만불손한 생각을 호떡 뒤집듯 바꾼 계기가 있었다. 몇 장 안 남은 달력을 보다 연말이 코앞인데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올해가 끝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응모한다고 뽑아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가 뭐라고 기회를 발로 차?’라는 생각이 무거운 엉덩이를 떠밀었다.


결심이 섰을 때는 마감이 코앞이었다. 처음부터 새로 쓰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일단, 야금야금 써둔 글을 추리고 다듬어 3시간 만에 응모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콘셉트로 글을 갈무리하고, 목차를 만들고, 서문을 쓰고 제목을 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아마 8천 여 편의 응모작 중 중 난 가장 짧은 시간에 응모한 사람은 내가 아닐까? 응모 버튼을 누른 시간은 짧았어도 실제로 글 쓰는데 투자한 시간은 많은 축에 속할 거다. 수년간 숨 쉬듯 써온 글이 브런치에 가득했다. 쓰고 싶은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썼다. 완성도는 접어두고, 일단 횟수에 의의를 두고 꼬박꼬박 썼다. 두 권의 책에 넣느라 <작가의 서랍>에 보내 둔 글을 제외하고도 400개가 넘게 쌓였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편인 나는 결과가 기대 이하일 때 쉽게 꺾이고 무너진다. 이 경험을 또 재생하고 싶지 않아 가능성이 없는 일을 시작하기 전,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 있다. ‘되면 좋고 아니면 경험이 되니까 도전에 의의를!’ 이 말 덕분에 응모 버튼을 누르기 한결 쉬웠다. ‘수상‘보다 참가에 ‘의의’를 두고 가볍게 응모 버튼을 누를 때처럼, 별 기대 없이 읽어 내려가던 메일 속에서 #대상이라는 단어를 확인한 순간, 당혹스러웠다. 이번 공모전 준비를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는 물론 영혼을 갈아 넣은 지원자들의 후기를 수없이 봤고 들었던 터였다. 겨우 3시간 만에 응모 버튼을 누른 ‘내가 왜 대상?’ 이래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이성과는 별개로 마음 한쪽에서는 이미 ‘내적 댄스‘가 한창이었다. 공식 발표까지 오롯이 혼자 있을 때만 출 수 있는 춤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일단 즐기자. 머지않아 춤을 추고 싶어도 추지 못하는 시간이 올 테니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수상의 기쁨은 순간이고, 계약서를 썼으니 곧 출간을 위한 고행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추가 원고를 쓰는 동안 머리를 쥐어뜯으며 재능 없음에 괴로워하고, 마감에 쫓겨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셀프 홍보의 낯부끄러움을 참아내고, 판매지수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날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대상을 탄다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을 아낌없이 즐겨야 한다.


시상식의 스타들처럼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만, 만나서 얼굴을 보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물질로 표현할 거다. 그간 차곡차곡 적립해둔 이자까지 쳐서 우쭈쭈쭈를 다 받아 낼 거다. 다만, 직접 만나지 못하는 얼굴 모르는 구독자들을 위해 이 긴 글을 썼다. 당신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었다. 그 응원과 격려가 모여 대상의 씨앗이 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의 결과는 나만의 대상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대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클릭과 하트(좋아요) 누르기가 이 결과를 만들었으니 여러분도 아낌없이 대상의 기쁨을 만끽하시길 빈다. 그럴 자격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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