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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24. 2023

[출간 알림] 이번 책에는 몇 잔의 커피가 들어갔을까?

<먹는 마음> 출간 비하인드

루틴 짜기를 좋아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욕실에 가서 볼일을 본 후 물로 입을 헹군다. 그리고 주방으로 와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을 따라 마신다. 그쯤 되면 정신이 돌아온다. 이건 뇌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저 눈을 뜨는 순간 기계처럼 차곡차곡 진행하는 일이다.    


글쓰기에도 루틴이 있다. 쓸 글이 있으면 별다방으로 향한다. 별다방 도착 5분 전쯤 사이렌 오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을 주문한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좋아하는 자리에 노트북을 세팅한다. 모니터가 켜질 동안 잠시 멍을 때린다. 주문한 커피가 완성됐다는 직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픽업대에 가서 커피를 받아 든다. 자리로 걸어가면서 빨대로 한 모금 쭈욱 커피를 빨아들인다. 차가운 커피가 몸 곳곳으로 퍼지는 걸 느끼며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글쓰기에 최적화된 몸 상태 세팅 완료다. 여기까지가 글쓰기를 위한 준비 루틴이다.      


한글 파일을 클릭하고 휴대전화 메모장을 켠다. 그간 생각이 날 때마다 적어둔 글감 주머니다. 거기서 건질 게 있으면 다행, 없으면 사진첩 폴더를 연다. 근래에 먹었던 음식, 만났던 사람, 기억하고 싶어 찍어 둔 책 페이지, 거리나 영상 속 캡처한 문장 등등이 가득하다. 하이라이트 인덕션처럼 버튼만 누르면 글감이 글로 끓어오르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원시인이 부싯돌로 불을 붙이듯 수없이 시도해야 단순한 단어나 사진 한 장이 한 편의 글이 된다.      


작업실이 없는 나는 대부분 집 아니면 카페에서 글을 쓴다. 주로 출근 전이나 주말에 쓴다. 집에서는 다듬는 정도지 초고를 쓰지 않는다. 카페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널린 게 카페지만 굳이 별다방에 가서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별다방 커피가 맛있어서 가는 건 아니다. 빵빵한 냉난방, 적당한 소음, 넓은 테이블 등등 커피맛보다 좋은 건 작업환경이다. 책상 뒤로 바로 침대가 펼쳐져 있는 내 방의 유혹적 환경에서 글쓰기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집중을 깨는 엄마의 식사 호출이나 간식 배달도 없다. 벽을 타고 넘어오는 아빠 방 티브이 소리도 없다.      


오롯이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5000원을 지불한다. 카페에 가면 뭐가 됐든 2시간 안에 결과물이 나온다. 평균 2시간. 그 이상을 넘어가면 다시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해야 한다. 잠시라도 딴짓하면 커피 한 잔 값이 더 나간다는 압박 덕분에 2시간 안에 강제적으로 초고를 완성한다. 이런 식으로 별다방의 별(리워드)이 쌓일수록 글도 쌓였다. 그렇게 쓴 글이 모여 <먹는 마음>이 됐다.      


지난해 12월,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을 하고 기쁜 건 딱 일주일.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그 순간부터 빚쟁이에게 쫓기는 채무자가 된 기분으로 반년을 살았다. 닦달은커녕 마음 넓은 출판사 분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보낼 때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송구한 마음을 담아 전송 버튼을 눌렀다. 실력의 민낯과 마주할 때마다 한없이 작아졌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콩쥐의 마음으로 겨울과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았다. 수상을 예상하고 응모한 글이 아니었기에 책으로 만들려고 보니 부족한 점 천지였다. 새로 쓰고, 다듬고, 고치고, 추가하기를 반복했다. 현생은 현생대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와중이니 나를 쪼개고 또 쪼개 글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맨 정신으로 여유롭게 글을 쓰기란 불가능했다. 채찍을 휘두르듯 카페인을 들이붓고, 시간제한으로 압박했다. 버튼을 누르면 제품을 토해내는 자동판매기처럼, 별다방 커피를 밀어 넣고 글을 완성해 냈다.     


이번 책에는 몇 잔의 커피가 들어갔을까? 별다방에서 전쟁을 치르듯 써 내려간 글이 책이 되어 이제 막 세상에 나왔다. 아마 누군가는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이 책을 보게 될까? 책의 내용은 치열함이나 간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치열함도 간절함도 내 몫일뿐, 읽는 사람들은 그저 이 책을 읽는 동안 편안하길 바란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한 끼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면 더 바랄 게 없다. <먹는 마음>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결승선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책의 앞날은 알 수 없지만, 그거 하나는 확실하다. 어쨌든 레이스는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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