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가기
"명태가 불쌍해."
같이 김밥을 싸면서 아이가 던진 말이다.
인류애도 아니고 갑자기 웬 동물애?
김밥을 좋아하는 부녀는 김밥 싸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빠르고 쉽게 싼다.
난 그다지 김밥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들이 좋아하니 군말 없이 먹는다.
그날도 김밥을 열심히 싸는 부녀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김밥재료들을 살피더니 게맛살을 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인다.
"우와 이렇게 살을 많이 있으려면 게가 몇 마리나 들어갔을까?"
이름이 게맛살이다 보니 당연히 게로 만들어졌는지 알았나 보다.
"사실 게맛살에는 게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어. 명태 같은 생선살이랑 밀가루를 섞어서 게살 맛이 나게 만든 거래."
아이는 완전 충격받은 얼굴이다.
"말도 안 돼! 게도 안 들어갔는데 어떻게 게맛살이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명태가 너무 불쌍해. 자기는 명태라는 이름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다른 동물 이름으로 부르니까."
"?????? 그러게???????"
명태살을 게맛살이라고 부르는 게 한 번씩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게맛살을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지만 명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이 덕분에 역지사지 아니 역지사명태까지 하게 되는구나.
나는 명태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나?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감추고 *페르소나로 살아가기 위해 애썼던 과거의 내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페르소나로 살아갈 때는 비싼 게를 부러워하며 내가 아닌 게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타고 다니는 차, 사는 곳, 옷 등. 대부분 외적인 것들이다.
휴직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마음껏 나를 위해 쓸 돈이 풍족하지 않다는 것도 한몫 하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나를 찾아가고 있다.
나에게 집중하다 보니 비싼 게를 부러워하기보다는 명태 본연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게 되니 내가 그냥 좋다.
이게 자아존중감 아니겠는가?
명태에 대한 너의 측은지심에서 엄마는 엄마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엄마는 게맛살이 아닌 명태 살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할게!
*페르소나 :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