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pink Oct 17. 2024

어떤 아이인지 키워보자.

아빠와 동네 마실을 나갔던 아이는 다있어에서 봉숭아 씨앗과 방울토마토 씨앗을 사 왔다.

방울토마토는 키워서 따먹을 거고 봉숭아는 키워서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일 거란다.

식물과 전혀 친하지 않아 들어오는 식물마다 죽어나가게 하는 나로서는 반갑지 않은 도전이기도 하다.

키우다가 죽어버리면 뒷감당은 어쩌나 싶어.

게다가 식물 키우기의 달인인 할머니는 늦여름이라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기는 어려울 거라고 하셨다.

잘 키우지 못해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로 죽은 것이라면 오히려 좀 덜 미안하겠다 싶어 안심이 된다.

아이는 자식을 잃은 어미처럼 한참을 슬퍼했다. 그러곤 눈물을 닦으며 싹이라도 튼다면 사랑으로 보살펴줄 거라며 애정을 담아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는 가장 먼저 화분에 달려간다. 물을 주며 모닝인사와 함께 얼마나 자랐느니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내 눈에는 어제와 똑같은 것 같은데 아이의 눈에는 0.1 mm의 성장이 1m의 성장이라도 되는 듯이 호들갑이다.

아이의 애정이 담겨서인지 곧 새순이 올라오고 키도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방울토마토 화분에 낯선 새순이 같이 올라온 것이 아닌가?

 ”잡초네? 자른 씨앗이 섞여 있었나 보다. 뽑아야겠다.”

라고 했는데 아이는 사랑스러운 말로 엄마의 무지막지한 말을 막아선다.


 “잠깐만! 얘도 예쁘게 생겼는 걸? 다 크면 어떤 아이인지 키워보자.”


맞다. 사람은 다 다르게 생겼고 다른 생각을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예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리고 날 것과 같은 모습에서 점차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은 참 신비롭다. 잠을 자지 않아 그렇게 애 먹이던 꼬마가 키워놓고. 보니 이렇게 엄마에게 감동을 주는 인간이 되어 있지 않은가?

아이를 키우는 과정 속에서도 내가 생각지 못한 새순을 만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 기준으로 아이의 화분에서 뽑아버리려고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엄마가 알지 못하는 너의 모습도 기다릴게. 너의 말처럼 그 모습이 나중에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엄마의 삶이 무료할까 봐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우리 딸 고맙다.

그래도 아주 가끔만 낯선 새순이 나왔으면….. 생각이 유연하지 못한 엄마는 새로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당황한단다.



이 글을 써 놓은 게 2달 전인데 낯선 새순의 운명과 두 화분의 소식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방울토마토는 무성하게 자랐으나 아직 꽃은 피지 않는 상황이다. 꽃은 없을 거라던 봉숭아는 풍성한 꽃을 피워 아이의 손톱에 예쁘게 물들었다.

그리고 방울토마토는 아니나 예쁘게 생겼던 낯선 새순은 아이의 희망을 알지 못했던 할머니에 의해 뽑혀 버렸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전 04화 내가 왜 말 안 듣는지 알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