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가난한 아이였고
나는 부유한 아이였다
아버지에게는 부모형제를 보필할 의무가 짐 지어졌고
나에게는 가족을 위한 희생이 요구되지 않았다
아버지를 버티게 한 건 먹고살기 위한 처절함이었고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한 건 내 부모의 성실함이었다
아버지의 가방끈이 끊긴 건 돈이 없어서였고
나의 가방끈이 멈춘 건 내 능력이 거기까지여서였다
아버지가 피땀 흘려 일구어낸 건 우리 분수만큼의 안락함이었고
내가 식은땀 흘리며 내내 바랐던 건 내 분수 이상의 풍요였다
아버지로 살아오느라 그의 청춘은 허공에 흩뿌려져야 했고
나로 살아야 한다며 나는 여전히 청춘을 부르짖고 있다
아버지에게 자리한 관절 통증은 지독한 훈장과 같고
나에게 머무는 성장통은 영원히 지속될 숙제와 같다
아버지니까 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나니까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많았다
아버지로부터 얻은 바지런함과 책임감을 실천하며 살겠다
나로부터 새로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염두에 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