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오키나와(Okinawa)
저는 일본인 친구가 두 명 있어요.
도쿄 사는 미카는 싱가폴 여행 중에 알게 됐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와서는 자기 친구가 한국에 잠깐 가 있다고 만나보면 어떻겠냐더군요.
오키나와 출신에 저와 동갑인 유미코는 한 대학의 한국어학당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녀가 한국에 온 이유는 딱 하나, 한국 아이돌을 너무 좋아해서였어요.
이 얘길 들은 친구들이 다 그러더군요.
적지 않은 타인들도 아마 이렇게 얘기할 것 같군요.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렇다면 저는 그에 반기를 들 생각입니다.
자신이 그동안 일해서 번 돈으로 남에게 피해 주는 일 없이 자기 행복을 누리겠다는데
무슨 상관인가요.
그들이 말하는 '그래도 될만한' 나이는 도대체 누가 결정지은 건가요?
그녀는 엔터 3사를 종횡무진하며 아주 행복하게 6개월을 지내다 집으로 돌아갔어요.
가자마자 다시 직장생활 중이죠.
나중에 알게 된 재밌는 포인트 하나 알려드릴까요?
그녀의 최애는 슈퍼주니어였어요.
왜냐면 그분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서 당당히 '오빠'라고 부를 수 있었대요.
저는 일본에 다섯 번 가봤는데 그 마지막 여행지가 오키나와입니다.
일본은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 혼자 뚜벅이 여행도 어디든 수월한데
오키나와는 렌트카가 절실했어요.
외국에서의 혼자 운전, 거기다 차선도 반대라 이걸 어쩌나 고민했는데
유미코가 같이 여행하자며 자신의 경차를 몰고 북부부터 남부까지 함께 해줘서
친구 덕을 톡톡히 봤네요.
오키나와의 규모가 크지 않고 알려진 관광코스도 정해져 있어
섬투어는 며칠 만에 여유롭게 끝났어요.
영롱한 에메랄드빛 바다,
광대하고 짙푸른 바다,
바다,
오 바다.
겨울이라 더 한가하고 바람이 매서웠지만 그만큼 더 조용해서 좋았어요.
바다에 감탄을 쏟아내는 저를 보고 친구는 말했어요.
오키나와는 바다밖에 없어. 지루해.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알 것도 같지만 아무튼 저는 다시 한번 말했어요.
근데 바다가 너무 멋있잖아.
귀국 전날, 공항 근처 세나가 섬의 우미카지 테라스에 갔어요.
모든 건물이 바다를 향해 있고 계단식에 하얀색이라
'오키나와의 산토리니'라 불릴만하더군요.
흐린 하늘빛을 환히 밝힐 만큼 하얗게 빛났어요.
돌아가는 길에 친구는 갓길에 차를 세웠어요.
바로 옆이 공항인데 자기는 거기 서서 비행기 구경하는 걸 좋아한대요.
이럴 수가!!!
비행기 아랫면이 저렇게 생겼구나.
비행기가 이렇게 가까이 날아오다니.
비행기가 내 머리 바로 몇 미터 위를 지나가.
네, 맞습니다. 제가 뽑은 오키나와 최고의 스팟은 바로 여기입니다.
인터넷에서 절대 구할 수 없고 관광객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인데
제 취향에 딱 맞아버린 거예요.
저는 진짜로 신이 났습니다.
하늘에 멀리 떠가는 비행기나 바로 앞에 세워진 비행기를 보긴 했어도
이렇게 가까이 나를 스치고 날아가며 그 이면을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저는 새가 되고 싶다고 말해요.
어디든 자유롭게 훨훨 다니고 싶거든요.
비행기도 하늘을 날잖아요.
그 상황 그 비행기들에 과몰입을 해보자면,
누구나 나를 알지만
누구나 나를 다 아는 건 아니야.
나를 보여주고 나를 볼 수 있는 대상은 구별되어 있어.
모두와 모든 걸 나누지 못하는 건 당연해.
Let it go, Let it be.
한참을 구경하는데 군용 트럭도 지나가고 하늘에도 뭐가 날아다녀서
여기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도 체감할 수 있었어요.
오키나와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얼마간이라도 여기서 조용히 살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친구는 서울에 다시 가고 싶다며 자기와 바꿔서 살자더라구요.
홋카이도에 가기 전에 영화 '해피해피브레드'를 봤고
오키나와에 가기 전에 영화 '안경'을 봤는데
그 둘이 말하는 삶의 방식과 제가 동경하는 삶이 일맥상통해서 한편으론 침울했어요.
그 길이 내게 빨리 보이면 좋겠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안내로 알맞은 곳에 다다를 그날을 고대하며
혹시 명백히 보이는데 나만 아직 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겠어요.
친구의 카톡 프로필은 아직도 '행복했던 한국생활'이라고 되어 있네요.
그래도 그녀의 삼십 대 시작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기억되고 있다니
그것도 성공의 한 조각 아닌가 싶네요.
하염없이 로또만을 바라는 삶보다는
단타로 1루씩 진격하며 성공의 순간순간을 맛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