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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Oct 19. 2021

시간을 샀습니다

시간선택제 교사의 약간 이른 회고

나는 경력 십 년 이상의 초등교사이며 2021년에 시간선택제를 처음으로 이용하고 있다. 공문을 읽어보니 이 제도가 도입된 지 몇 해가 흘렀던데 나는 작년에야 이걸 알게 됐다. 우리 학교에 두 분이 이렇게 근무하셨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해 공문도 그냥 넘겨버렸을 것이다. 우선은 자격요건에 해당하지 않은 것 같아서 지레 포기, '월급이 절반'이라는 어마무시한 조건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현 근무지의 사정도 녹록지 않고 마침 그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동료들이 바로 옆에 있어 적당한 조언도 들을 수 있어 나는 신청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고, 현재까지 나는 삶의 질이 수직 상승했음을 매주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공문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으며, 공문을 받고 나서 신청서를 작성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으며, 신청서를 작성해놓고도 교무실에 내려가기까지 며칠이 걸렸던가. 어차피 할 거였음 '한 번 해보지 뭐'하고 쿨할 걸 싶지만 주변에 이런 사례도 없고 나도 처음 접하는 것이니 긴장이 안될 수가 있나. 솔직히 마음은 이미 기운 상태에서 단지 타자의 지지가 필요했던 것인데, 쐐기는 나보다 나를 더 아끼는 내 엄마가 박아주신 거나 다름없다.   


"네 일 네가 알아서 잘해왔는데 뭘 망설여. 하고 싶으면 해. 일한 지가 벌써 이렇게 됐구나"


초등교사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 후 20대 중반에 바로 취업을 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쉼 없이 직장생활을 한다. 학생으로 줄곧 학교에 소속되어있다 교사로 신분만 바뀐 채 다시 줄곧 학교에 소속되는 것이다. 물론 시대가 여러모로 달라졌지만 교사 집단의 특성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다고 본다. 교사는 인간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나는 내 직업이 요구하는 사명감이 좋다. 하지만 일개 직장인으로서 나도 여러 불평불만들을 늘어놓고 살았다. 그래도 그 비난의 화살이 아이들을 겨눴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에 있어 나는 양심에 꽤 떳떳한 입장이다. 나를 직업에 대한 혐오로까지 몰고 갔던 건 모두 조직 내외의 성인들 때문이었다.

  

내 또래쯤 되는 대부분의 여교사들은 육아휴직으로 최소 일 년은 학교 울타리밖에 머문 경험이 있다. 4년 만에 복직한 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자연인'이 된 기분이라고 다. 그에 비해 나는 아직까지 온전히 학교 밖에 있어본 적이 없다. 육아, 질병이 아니면 교사들이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휴직 사유가 사실 매우 제한적이다 보니 미혼이고 아픈데 없는 나 쉴만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쉼을 더 갈망했던 것일 테지. 가장 잡음 없는 휴직은 서울시교육청이 경력 10년 이상의 교원에게 일 년의 무급휴직을 평생에 한 번 쓸 수 있게 한 것인데, 살면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니 그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둬야 한다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어 나도 그 카드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가 교사 발령 대기자 적체라는 난항을 겪으며 빗장살짝 열고 나는 공무원 사회에서 '시간을 선택한다'는 이 전대미문의 발상에 힘입어 드디어 학밖으로 한 발을 게 된 것이다.


코로나 복직자가 급증하는 마당에, 나는 안 그래도 얼마 되지도 않은 내 연봉의 절반을 '시간'에 투자했다. 다시 말해 평일 5일 중 2.5일을 돈 주고 산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엄청나다고 자평하는 바다. 개인적으로 내가 관심분야가 뚜렷하고 바쁘게 사는 편이라 더 그런 것 같다. 그동안은 7일 중 주말 이틀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면 이젠 반대로 7일 중 5일은 무조건 기대되는 날이 되었다. 빨리 시간을 달려서 금요일에 닿기만을 바라 오다가 이젠 나머지 요일들까지 다 아깝고 소중한 하루하루가 된 것이다. 평일이란 걸 생전 처음 살아본 느낌이다. 오전에 길을 걷다 '아, 행복해'하며 가슴 벅차 게 어디 한 두 번 인가!


이제 두 달 뒤면 2022학년도 신청 공문이 오는데 애초에 1년만 쓰겠다 했던 나의 다짐은 요즘 들어 흔들리고 있다. 지난 8개월여간 내가 누려온 시간과 일궈온 사유, 그리고 경험들이 아리도록 애틋하기 때문이다. 다시는 또 없을 시간 같아 아쉬워서 더 그런다. 모르면 계속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지만 일단 알고 난 다음에는 내적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얼마 뒤 내 생각이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나도 매우 궁금해진다. 나와 짝을 이루는 후배는 내년에도 3년째 계속할 예정다. 나도 어느 쪽을 택하든 숙고 끝에 내린 것일 테니 후회는 않기로. 모든 시간은 그에 마땅한 이성과 감정을 비축하는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기회비용 없는 일은 세상에 없.



동료들이 많이 묻는 질문들을 나열해보면 이렇다.


1. 신청자격 : 제도의 목적과 신청 사유가 공문에 자세히 나와있으나 사실상 가장 직접적인 시행 효과가 발령 적체 완화이므로 신청해서 자격 미달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시간제 교사 둘을 교원 한 명으로 치기 때문에 그 학교에는 한 명이 더 발령 나고, 그 둘이 '덜 받는' 연봉은 다른 교사 한 명의 연봉이 되는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는 고경력자들이 신청할수록 지출을 줄일 수 있고, 개인으로서는 호봉이 높을수록 손해가 크다. 그러니, 관심 있는 교사들은 한해라도 빨리하시길 추천한다. 무엇이든 어릴 때 하라는 말이 여기서도 통한다. 호봉이 올라갈수록 돈이 아까워서 점점 못하게 된다는 후문은 사실이다. 올해 이렇게 '행복하다' 부르짖고 있는 나조차도 '풀타임 근무했으면 이번 달에 얼마 들어올 텐데..'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2. 급여 : 호봉의 절반이다. 그러나 기여금 등의 세금은 똑같이 공제되기 때문에 실수령액은 절반이 안된다.


3. 경력 : 절반만 인정된다. 단, 현 근무지 근무년수는 다 인정한다. 즉, 서울은 5년마다 전근인데 5년 내내 시간제를 썼을 경우 인사기록상 경력은 2.5년밖에 안 올라가지만 전근은 정상으로 이루어진는 얘기다.


4. 승급 : 호봉은 해가 바뀌면 올라간다.


5. 업무 배당 : 서울시교육청은 시간제 교사의 담임업무 제외 규정을 공문에 명시했고, 그 외 업무분장은 학교 자율이다.  


6. 근무시간 및 수업시수 : 주 20시간 근무이고, 서울시교육청은 주당 수업시수를 14시간 미만으로 공문에 명시했다.


7. 출근일 : 우리 학교는 두 명 모두 월화수 출근을 한다. 올해도 작년처럼 한 사람은 월화수, 한 사람은 수목금으로 나누려고 했으나 코로나로 인한 학년별 등교일에 따라 이렇게 변경되었다.


8. 시간제 근무 중 휴직, 전일제 교사로의 재전환은 원천적으로 금지 : 부득이한 경우 어떤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다고 공문에 나와있다.  


9. 병가, 연가 등은 시간으로 비례해서 계산 : 어차피 쓸 일이 없어서 자세히 모르겠는데 이것도 절반으로 보면 된다.   


10. 사용연수 제한 : 없다. 서울의 경우 작년 합격자들도 아직  발령 대기 중이라 현상황에선 축소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전망이다.


11. 신청 및 확정 : 12월에 공문이 오고, 신청서를 내면 교내 인사자문위원회를 거치고, 이후 교육청에 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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