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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Dec 04. 2021

연말은 업무분장 신청서를 들고 찾아오죠

초등교사들이 긴장하는 시간

12월, 방학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여름방학도 아닌 겨울방학이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왜? 내년도 업무분장의 가닥이 잡히는 때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신청서를 내긴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학년이나 업무는 해마다 몰리기 마련이고 내부 규정이 있긴 하 인사는 관리자 권한이니 애타는 심정으로 그분들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혁신학교는 모두가 모여 함께 결정한다고도 하죠). 이 시기의 최고 난제는 부장 인선이다. 승진때문에 부장점수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웬만해선 부장을 원치 않기에 교감님이 가장 난처하실 때다. 한편, 부장 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농후한 교사들은 그 어색한 거절의 대화들을 최대한 피하고자 교무실 출입도 삼가고 행동반경을 좁히기도 한다.


우리 학교는 작년 12월 말에 부장을 순번제로 하겠다고 갑자기 결정했다. 부장 자리가 차지 않자 마지막에 초강수를 둔 것이다. 특수부장은 '경력 15년 차 이하, 본교 근무 4년부터 내림차순', 학년부장은 '경력 15년 차 이상, 본교 근무 4년부터 내림차순'이며 6개월짜리 진단서나 휴직 예정이 아니라면 예외는 없다. 15가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윗선의 결정은 그랬고, 그에 따라 미션은 간단히 클리어 되었다. 요즘은 순번제로 돌아가는 데가 꽤 있어서 반발을 하고 말 것도 없었다. 예년 같으면 찬바람이 불기 전부터 부장 얘기가 나올 텐데 든든한 그 법칙 때문인지 올해는 12월인데도 학교가 조용하다.


초등교사가 전문직이냐 아니냐는 교사로서 매우 자존심 상하는 문제다. 1 더하기 1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자격요건이 딱 그 수준이라는 것인가? 그런데 일반인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건 남의 시선을 떠나, 교사 자신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면 된다고 본다. 교육에 대해 사명감이 있고 연구를 많이 하는 사람은 본인을 당당히 전문가로 인식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반대테고.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대학교에 들어가야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수능 고득점자들의 러쉬가 두드러지며 사실상 입학 커트라인 자체에서 교사되는 문턱은 급격히 높아졌다. 그리고 말이 '대학교'지 타이트한 커리큘럼으로 여전히 고3 생활을 하는 느낌이 들어 나는 대학생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만 같다. 다들 공부는 왜 그리 열심히 하는지. 이렇게 지식이 충만한 자들이 지식을 더 많이 쌓아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현장이 그동안 공부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 중 통하는 게 무엇이던가. 학문에 대한 것이라면 누구보다 좋은 점수를 받을 자신이 있지만, 교사의 주된 임무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것이라 예측불가하고 광범위한데다 교사에게는 교육과 상관없는 일들도 많이 주어지기 때문에 '현타' 많이 온다. 학교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고 교사 개인의 성향에 따라 바라보는 경중이 다를진대, 수업보다 다른 업무가 더 커지거나 중시되는 주객전도 비일비재하고 이것이 교사에게 회의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에는 누구도 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우리가 정의하는 '전문'의 영역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 그리고 이것이 교사로서의 소양이나 자질을 일컫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일은 젊어서 해봐야 돼, 나도 옛날에 다 했어"

선배님 말씀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나도 신규 때 학교의 잡다한 업무를 두루 거쳤고, 지금 제일 일을 많이 해야 할 때고, 나중에 나이가 들면 중한 업무에서 제외될 것을 기대한다. 번외로, 어린 자녀가 있다면 규정상 약간 더 자유를 얻을 여지도 있다. 원래 일을 n분의 1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특히 초등교사들은 학급운영을 제외하고 학교 전체 업무상 전문분야란 게 없기 때문에 어떤 이라도 맡겨지면 그의 담당자가 되고 일부 사람들은 큰 짐을 짊어지게 된다. 런데 다들 어떤 과업이라도 무난히 해낸다는 것 또한 우리 집단의 특징이다. 다만 일의 부피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은 업무가 오길 바랄 뿐이며, 일을 맡은 이유가 나이가 어려서 또는 거절을 못해서였다면 거기서 오는 불편함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해보겠다는 자세도 필요하겠지만, 무슨 일이라도 협조를 구할 수 있다는 동료들 사이의 신뢰도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무엇보다, 사회는 교사의 의무를 교육에 집중시키고 관리자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문화가 선결된다면 상황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코로나로 학교가 혼란스럽지만 내년도 학교 계획을 꾸리는 시기이고 교사들도 내년도 업무분장에 대해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현명하고 공정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즐겁게 학교에 다니고 싶다. 순수한 아이들과 좋은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 버겁지 않은 일을 받길 바라지만 버겁더라도 보람이나 성장이 있을만한 일을 받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손엔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것이 쥐어질 것이고, 그 불운의 후보 중엔 나도 끼어있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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