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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Dec 13. 2021

다만 네 학교가 행복했음 좋겠다

선생님 마음은 그래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계단에 고학년 남학생 세 명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눈에 바로 띄었다. 온몸을 휘덮은 두꺼운 패딩에 검은색 마스크까지 쓰고 내내 뒷모습만 보였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원어민 교사에게 저 아이 6학년 맞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수업을 하는 3~6학년 학생들 480여 명의 얼굴과 이름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다. 5학년 아니면 6학년일 거라고 하는데,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아이 같다고 6학년이 아닐까 재차 물으니 원어민은 맞다면서 그 남학생의 이름을 말했다. 저학년 때부터 좋지 않은 이유의 유명세가 있는 아이긴 하지만 우리 학교에 3년째 근무 중인 이 외국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나는 좀 놀랐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그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 같길래 나는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그리고 용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아이를 1층 현관에서 만났다. 아까 그 두 명의 학생들은 없었다. 나와 아이는 거의 동시에 알아봤다. 올 2월 종업식 때 보고 처음 본 것이니 십 개월만이었다. 그땐 내가 앞머리도 없었는데 어떻게 나를 바로 알아본 거니.


- 오~~ 맞구나.

/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코로나로 학년별 등교일이 다른 까닭에 나는 작년 아이들을 볼 수가 없었다. 6학년은 내가 출근을 안 하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학교를 왔다. 수요일은 전 학년이 등교를 했으나 나는 오전 내내 수업이 있고 우리는 사용하는 층도 달라 오가며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다들 잘 다니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올해는 희한하게도 우리 학교에서 최고로 순하고 최고로 착한 학년이 6학년이라는 평가가 있어서 아이들 모두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더 특별해서 꼭 안부를 묻고 싶었었다. 툭 치면 욕이 나오고 불리하면 거짓말이 나오고 걸핏하면 시비가 붙고 성실성도 찾을 수 없었지만 결코 악의적이진 않았기에 나는 그 아이가 절대 밉지 않았다. 물론 울화통이 치민 적이 없진 않았지만 아이의 성향이 형성된 배경을 먼저 그려보게 되었다. 이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 하고 친구들의 관심을 받으려 하는 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순진함이 있었다. 아무리 사고를 쳐도 학생에게 그런 순진함이 보이면 나는 마음이 얼어붙지 않는다. 


아이의 마스크 위로 보이는 건 안경 너머의 눈과 작년보다 여드름이 많이 나있던 이마뿐이었다. 키는 머리 하나만큼은 더 커져있었다.

- 너인 것 같아서 선생님이 뛰어 내려왔어.

/ 아~

- 잘 지내?

/ 네.

- 반갑다. 보고 싶었는데.

/ (미소)

- 어떻게 지냈어?

/ 잘 지냈어요.

- 키도 많이 크고 목소리도 변했네.

/ 네, 키 많이 컸어요.


잘 지내냐는 말을 계단을 올라가며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 반가움을 한껏 표현해주고 싶은데 얼마나 전달됐을는지. 등을 툭툭 치며 나름의 격려 더한 정도였다.

 

- 요즘도 게임 많이 해?

/ 아니요?

- 끊었어?

/ 네

- 오~~


내 교실은 3층, 그 어린이의 행선지는 4층. 3층과 4층이 갈라지는 그 계단에 다다랐다.


- 이제 졸업이 얼마 안 남았네.

/ 네.

- 선생님이 항상 생각하고 있다. 잘 지내.

/ 네, 안녕히 가세요.


비록 '네, 네'뿐인 대답이었지만 아이도 나를 반가워하는 것 같아 전혀 어색하 않았다. 혹시 또 모르지, 돌아서면 그냥 잊어버릴지도. 나만 이렇게 반갑고 아쉬운가? 그래도 상관없다. 솔직히 '중학교 가도 선생님 잊으면 안 돼'라고 주책맞게 끝마디를 장식할까 잠깐 고민하다 오버하지 않았다. 그저 너를 응원하는 사람이 여기 하나 더 있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제넘은 걱정이겠지만 이 아이의 초등학교 기억 속에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따뜻함이 얼마나 자리하고 있을까 하는 안쓰러움이 전부터 있어왔다. 쪼록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너도 착하게 잘 자라나길 바라.

 

초등학교는 한해살이다. 교사도 학생도 새해가 되면 새로운 구성원들을 만나고 그에 금방 적응한다. 아무리 작년이 좋았어도 지나가면 끝이고, 아무리 작년이 힘들었어도 지나가면 끝이다. 그런데 그 감정의 유효기간은 보통 교사들이 더 길다고 한다. 나는 아무리 맺고 끊음을 잘해야 한다고 해도 직업병이기도 하고 원래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그런지 애틋함이 반짝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거쳐간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이십 대 청년시절을 보내고 있다. '애들' 참 빨리 큰다. 다들 행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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