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어부였다
할아버지가 잡은 고기는 그날그날 공판장으로 갔고
돈으로 환산 못한 고기들은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바다의 파닥임은 언덕 너머 우리 집까지 당도했다
나는 고기의 행선지가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남의 입이든 우리 입이든
할아버지의 주머니와 우리의 뱃속 둘 중 하나는 채워질 테니까
어부는 마음은 나와 달랐으리라
우리 집과 할아버지네는 같은 동네지만 각자의 먹고 삶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바다로 나갔고 아빠의 터전은 육지였다
나는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자전거로 그 사잇길을 왕래했다
밀고 써는 파도가 억겁의 시간을 철썩거렸으나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스치고 지나간 시간의 자취는 거기에 남아있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제 없다
할아버지의 고기는 어릴 적 진작 사라졌다
그러다 김훈의 흑산이 할아버지를 그려줬다
노인의 평생은 그러했구나
그의 갈라진 손은 아빠의 손과 닮았었다
김씨네 가장들은 장렬했다
청춘의 바다는 거칠었고
청춘의 육지도 그러했다
흔들리는 물 위에 햇빛이 내려앉아서
바다에서는 새로운 시간의 가루들이 물 위에서 반짝이며 피어올랐다*
할아버지는 다시 있다
어느 노작가의 글과 이 바다가 다시 불러내주었다
자전거로 넘나들던 언덕은 평지가 되었고
바다에는 젊은 배들이 들어차있다
내가 돌리는 체인의 힘은 아직도 힘차며
우리 동네 바다는 여전히 세차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육지를 살고
그에게서 온 시간은 이렇게 빛나고 있다
(*는 김훈 작가의 흑산에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