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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유 Feb 21. 2021

[내 생애 첫 오페라/다시 만난 너에게]

<유쾌한 미망인 / 입술은 침묵하고, Lippen Schweigen>

 오페라를 한 번도 공연장에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무척 많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죠. 관심 자체가 없어서,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티켓 값이 너무 비싸서 등등...... 모두 끄덕끄덕 고개가 끄덕여지는 납득이 가는 이유지요. 종종 저에게도 ‘볼만한 오페라’를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에게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답니다. 바로 ‘유명한 오페라’ 면 좋겠다, 라는 것. 이보다 애매모호한 기준이 있을까요? 얼마큼 알려져야 유명한 거고, 어떤 사람들이 봤다고 해야 유명한 걸까요?


 ‘오페레타’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오페레타(operetta)는 작은 오페라라는 뜻으로 오페라에 비해 규모도 작고 가벼운 소재를 담은 음악극입니다. 오페라 작품의 소재가 종교, 정치, 귀족 사회의 모습을 담은 무거운 이야기들인데 반해 오페레타는 그보다 서민적인 소재로 풍자적인 요소가 많아요. 작품의 유명도와는 달리 들어보면 귀에 익숙한 곡들이 많을 거예요. 화려한 선율이 돋보이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 뻥 뚫리는 듯 시원한 고음의 ‘Dein ist meine ganzes hertz(당신은 나의 태양)’, 그리고 클래식 콘서트 좀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멜로디의 이중창 ‘Lippen schweigne(입술은 침묵하고)’.

오페레타 작품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헝가리 작곡가 레하르의 <유쾌한 미망인> 일 겁니다. 레하르는 이 작품으로 일약 백만장자가 되었다죠.

작품의 배경은 ‘폰테 베드로’라는 작은 국가인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입니다. 파리에 있는 폰테 베드로 대사관에서 폰테 베드로 국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이 파티에 젊고 아름다운 여인 ‘한나’가 나타납니다. 한나는 돈 많고 나이도 많은 남자랑 결혼을 했다가 남편이 죽는 바람에 폰테 베드로 전체 재산의 반을 유산으로 받게 된 젊은 과부입니다. 현재 파리에 머물고 있는 한나가 만일 파리의 남자와 재혼을 하게 되면 폰테 베드로의 막대한 재산이 파리로 유출되기 때문에 폰테 베드로 대사관에서는 한나의 옛 연인 ‘다닐로’를 내세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막아보려 하는데요. 실재하는 많은 사랑이 그렇듯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두 연인, 한나와 다닐로는 다닐로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진 사이입니다.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아직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았음에도, 한나는 다닐로의 부모님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그리고 다닐로는 자신을 훌쩍 떠나버렸던 한나에 대한 원망 때문에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죠. 두 사람의 재회가 가장 큰 이야기긴 하지만 오페레타라는 장르의 특성상 화려한 춤과 왈츠의 선율, 그리고 남편 몰래 밀애를 하는 대사관 아내의 이야기 등 소소한 재미 요소들이 많아 보는 내내 흥미진진합니다. 이 작품은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남녀 주인공이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 유명해요. 한나와 다닐로가 다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달달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 ‘lippen schweigen(입술은 침묵하고)’입니다. 클래식 콘서트나 열린 음악회 같은 무대에서 남녀 두 성악가가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고, 중간 왈츠 리듬에는 사뿐사뿐 춤도 추며 노래하는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전주는 익숙한 선율로 시작합니다. 물론 작곡가인 레하르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어~’ 우리 민요와 흡사한.


Lippen schweigen's

flusterns Geigen

Hab' mich lieb

All' die Schritte sagen bitte

hab' mich lieb

Jeder Druck der Hande

deutlich mir's beschrieb

Er sagt klar 's ist wahr's

ist wahr

du hast mich lieb


입술은 침묵하고

바이올린은 속삭이네

나를 사랑한다고

스텝마다 말하지

제발 날 사랑해다오

손짓마다 분명히 보여주지

나는 알고 있다오 그렇다고

나를 사랑한다고


이렇게 번역된 가사를 써놓고 보면, ‘차라리 못 알아듣는 원어가 낫다!’ 싶은 마음을 들 정도로 오글거리죠? 그래서 완벽한 번역보다는 어떤 내용의 노래인지 정도만 파악하고 듣는 게 오히려 집중이 잘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만난 연인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이렇게 노래했다면, 분명 앞으로의 사랑도 다짐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처음 보았던 기억 속에

파란 하늘빛 미소 여전한 넌

지난 시간 세월을 얘기하듯

야윈 모습으로 손을 내밀고

나 역시 서툰 웃음과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나의 맘 속에 맘으로

널 그리워해 왔다 말했었지

이제 다시 사랑을 가슴에 묻고

나누어지는 슬픔은 없을 거야

내 안에 있는 소중한 것을

모두 다 너에게 주고 싶어

(피노키오, 다시 만난 너에게)


2018 국립오페라단 <유쾌한 미망인> LG아트센터 커튼콜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Die lustige witwe)>은 나이 많은 남편이 일찍 죽는 바람에 그 나라 최고의 부자가 된 젊고 아름다운 '한나'라는 여주인공이 옛 연인과 재회하는 내용으로 펼쳐지는 내용이지만 신경전을 오가는 유산 문제, 대사관 아내의 바람 등 세속적인 이야기가 가미돼 무척 흥미진진하게 관람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작품은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을 거쳐 미국에 상륙했는데 시카고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5000회를 넘는 상연 기록이 존재합니다. 특히 런던 초연 때 독일어 대본이 아니라 영어 대본을 사용해서 <Die lustige witwe> 독일어 제목보다 영어 제목인 <The merry widow>가 익숙하기도 하죠. 왈츠! 하면 떠오르는 요한 슈트라우스처럼 앞으로 소개될 오페레타 장르에는 레하르라는 작곡가의 이름이 빠지지 않을 겁니다.


<유쾌한 미망인>이 2018년 LG 아트센터 무대에 오를 때 국립오페라단에서는 “뮤지컬보다 더 재밌는 오페레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는데요, 오페라와 오페레타 그리고 뮤지컬, 이 세 장르의 연결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고 봅니다. 18세기 후반에 발달한 대중적인 음악극 오페레타는 19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가 대중적으로 흥행하며 오늘날 뮤지컬의 시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벼운 소재로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오페레타에 관심이 간다면, 레하르의 대표작 <Das land des lachelns(미소의 나라)>와 <Gieditta(쥬디타)>도 함께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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