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진실, 다정함을 담아할머니에게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10

by 행복한독서
“자장자장 작은 훌다야,
네 인생에서 씨실과 날실은
언제나 서로 교차될 거야.
언젠가는 자카드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게 되겠지.
뜨거운 직조기의 먼지와 소음 속에서,
염색약과 표백제의
지독한 냄새 속에서 말이야.”



할머니를 위한 자장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 이지원 옮김 / 72쪽 / 25,000원 / 비룡소





저는 언제나 직물의 아름다움과 힘에 감탄해왔어요. 미적이고도 실용적이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죠. 어린 시절 직물공업도시에서 자랐는데 19세기 폴란드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약속의 땅’처럼 여겨지는 곳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방직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고, 굴뚝의 연기를 보고, 거리에서는 면을 찌는 냄새, 염색 색소의 냄새를 맡고 자랐는데 그러한 환경이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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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도 방직공이었는데 할머니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주 어릴 때부터 일을 했어요. 집에도 방직기계가 있었죠. 할머니는 은퇴할 때까지 3교대로 공장에서 일하셨고, 저에게는 바느질하는 법, 구멍 난 곳을 기우는 법, 자수와 단추 다는 법 등을 가르쳐 주셨어요. 요리도 할머니에게 배웠어요. 할머니가 불러주셨던 노래와 이야기, 함께했던 산책, 방학에 함께 놀러간 것 등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제가 정말 할머니를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어른들의 얘기에 따르면 제가 할머니와 성격이 닮았대요.


언젠가 우츠 근처의 박물관에서 본, 옛날에 공장에서 발행하던 고객용 직물 카탈로그에서 이 책의 영감을 받았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죠. 저는 ‘책 속의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도 펼쳤을 때 그런 카탈로그의 느낌을 주도록 만들어졌어요.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이야기가 그냥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 되도록 만들기는 쉽지 않았죠.


저는 이미 제가 기억하는 우리 할머니의 나이이고, 손녀 보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제가 할머니의 첫 번째 손녀였던 것처럼요. 저는 할머니를 아기로 상상하고, 고문서 보관소에서 할머니의 출생과 세례 증명서를 찾아내었어요. 그때의 감동이, 그 작은 훌다를 위해 자장가를, 마치 내 손녀에게 써주는 것처럼 써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이 책을 저와 함께 만든 건 제가 모르는 다른 여성들이에요. 바느질, 손수건, 냅킨 안에 그들의 즐겁고도 슬픈 생각이 다 담겨있었겠죠. 자수와 바느질은 명상과 비슷해서 손을 움직이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그렇게 만들었던 천들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거나 버려지거나 잊히게 된 거예요. 저는 그런 헌 천들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수집했어요. 그 천들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있도록,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요. 이야기를 하는 건 보통은 남자들이죠. 정치와 전쟁 이야기. 이 책에는 커다란 역사의 흐름을 배경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집안의 이야기가 펼쳐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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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과정에서는 글 쓰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시적이면서도 정보가 담겨있는 논픽션을 쓰는 것, 천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 한국어판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어요. 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조젯이라든지 자카드, 플란넬에 대해 알 수 있기를 원했어요. 지금은 천을 사기 쉽고, 그 생명은 짧아졌고, 우리는 계속해서 새것을 원하며 천을 소중히 하지 않아요. 하지만 옛날에 천은 사치품이었죠. 저는 자랄 때까지 겨울 내내 코트가 한 벌, 그리고 봄 코트가 한 벌 있었던 시절을 기억해요. 그 색깔과 모양과 단추도요. 책 속 할아버지 할머니의 첫 번째 데이트에 나오는 그런 백 년 전의 원피스에 쓰인 천이나, 할아버지 양복의 천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고조할머니가 머리에 쓴 베일에 쓰인 튈 천, 장례식 때 쓰던 쉬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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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책이 직물 카탈로그처럼 큰 판형으로 만들어지길 원했어요. 실이나 재질, 자수의 세부가 다 잘 보이도록요. 비싼 제작비가 들었을 테고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거라 이렇게 해주신 비룡소에 감사해요. 폴란드에서 촬영과 디자인을 했는데 다리아 쉬드워프스카 씨의 훌륭한 사진 덕을 많이 보았어요. 이 책의 제작비 때문에 제 나라인 폴란드보다는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긴 해요. 하지만 제 에이전트이자 아트디렉터인 이지원 번역자 덕분에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 것이 기쁘기도 해요.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실 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 인생에서의 기념품을 모으고, 기록해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너무 늦기 전에요. 제가 우리 막내아들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좀더 잘 들을걸, 세세히 좀 물어볼걸, 저는 할머니의 인생을 조각조각밖에 모른다고요. 그랬더니 제 아들 야넥은 “하지만 모든 걸 정확히 다 알았으면 이런 책은 엄마가 못 만들었을 거야. 그 얘기를 그냥 전달하는 책을 만들었겠지”라고 하는 거예요. 가끔은 우리 자신이 가진 실과 아이디어로 우리는 구멍을 메울 수 있어요. 과거에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내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요. 소비주의가 만연한 지금 세상에 이 책이 잠시의 기억과 진실, 다정함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가길 바라지요. 우리를 정말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은, 숨겨놓은 마음을 발견하기를요. 이 책 덕분에 한국의 독자들에게까지 알려진 우리 할머니의 오래된 사진과 수틀을 바라보면, 그리고 볼로냐 라가치상도 받게 되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저는 감동으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요. 할머니, 이런 건 생각지 못하셨겠죠?


번역 이지원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코페르니쿠스 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한국에서 그림책을 출간하며 그림책작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BIB 황금사과상(『생각하는 ABC』), 볼로냐 라가치상(『마음의 집』, 『눈』) 등 다수의 상을 받았고 『할머니를 위한 자장가』로 2020년 볼로냐 라가치상 뉴호라이즌 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작품으로 『주머니 속에 뭐가 있을까』 『네 개의 그릇』 『우리 딸은 어디에 있을까?』 『두 사람』 등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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