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수많은 규칙들은 어디서 왔을까?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11

by 행복한독서
말도 안 돼! 이런 엉터리 세상이 어딨어?
규칙도 엉터리, 게임도 엉터리!
지키지도 못할 규칙이나 만들어
나를 괴롭히다니!
내가 진짜 규칙이 무엇인지 알려주겠어.


이상한 꾀임에 빠진 앨리스

김지영 글·그림 / 44쪽 / 15,000원 / 향





아이들과 생태 체험관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라 그런지 안내 화살표의 한 귀를 없애고 ‘토끼를 따라가세요’라고 되어있었습니다. 재밌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토끼가 저를 어딘가로 이끌었습니다.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였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언제 읽어도 재밌고 그런 나라가 진짜 없다는 게 섭섭할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땐 터널이나 굴만 봐도 ‘저 너머에 다른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한편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시대와 귀족사회를 풍자했습니다. 의미 없는 허례허식을 반복하는 귀족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명령하는 기득권자들의 모습을 이상한 나라에 등장하는 이상한 인물들에 투사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착안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앨리스가 빠진 이상한 나라는 픽토그램으로 이루어진 게임 세상입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삶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앨리스가 통과하는 게임은 우리가 매일 헤쳐나가는 미션들과도 닮아있습니다. 화장실 앨리스는 지겹고 심심하던 차에 지나가던 비상구 토끼를 따라나섭니다. 기호 판에서 빠져나와 달리는 토끼의 일탈을 자신도 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토끼는 앨리스를 그대로 게임 속에 끌고 들어갑니다.


환영합니다!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두 개의 게임 규칙은 앨리스가 지킬 수 없는 규칙입니다.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표지판 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습니다. 앨리스가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규칙을 더 어기게 되고 앨리스는 감점당합니다.


앨리스(1).jpg


1단계는 실험실입니다. 앨리스보다 더 작은 공간에서 앨리스는 ‘만지지 마시오’라는 규칙을 지킬 수 없습니다. 때마침 몸이 작아지는 약물을 발견한 앨리스는 다시 토끼를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2단계 식당에서도 동물들과 앨리스는 영문도 모른 채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그때 식당이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소시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어디론가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말란 규칙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또 규칙을 깰 수밖에 없습니다. 토끼가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앨리스가 선구적으로 규칙을 깨자 동물들도 뛰어내리고 의도치 않게 끌려가는 동물들을 구해주게 됩니다. 앨리스와 탈주범들은 게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금지 경비병들이 앨리스와 동물들을 쫓아옵니다. 하지만 게임은 그대로 진행되고 앨리스의 게임 에너지는 계속 떨어져 갑니다.


앨리스(2).jpg


결국 3단계 공사판에서 앨리스는 잡히고 끝판왕 여왕에게 끌려갑니다. 하지만 여왕의 모습이 어딘가 앨리스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많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맞서고 넘어서야 할 끝판왕은 내부의 비판자일 수도 있습니다. 3단계의 여왕은 앨리스 자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앨리스(3).jpg


여왕은 앨리스를 영원히 게임 속 표지판에 가두도록 명령합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이제 말이 되지 않는 규칙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이 게임은 엉터리라고 말합니다. 앨리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러자 여왕과 게임 속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앨리스는 더 이상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규칙에 순응하는 앨리스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을 주도합니다. 여왕을 현실로 데려와 진짜 규칙을 가르쳐주고 친구가 되어 더 이상 심심하고 지루하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해나갑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많은 규칙과 명령들에 물음표를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공익을 위한 규칙도 있지만, 한편에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혹은 그냥 예전부터 지켜왔기 때문에 지켜지는 규칙들도 있습니다. 혹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규칙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에 물음표를 던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앨리스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지영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배웠습니다. 그동안 느끼고 배워왔던 것을 그림책을 통해 한 굽이씩 펼쳐내고 있습니다. 『사막의 아이 닌네』 『요리 조리 쿵딱 내 하늘 내 마음대로』를 쓰고 그렸고, 『우리는 친구』 『내 짝꿍이 최고야』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2017년 중앙아시아 그림책 프로젝트 작가에 선정되었고, 2019년 나미콩쿠르에서 그린아일랜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억과 진실, 다정함을 담아할머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