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우리를 배신할지라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by 행복한독서
그러니까, 당신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네.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루리 글·그림 / 52쪽 / 13,000원 / 비룡소


엊그제 저녁거리를 사러 늘 가던 동네의 마트에 갔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간판 불이 꺼진 채 매장 안이 텅 비어있었다. 365일간 열려있는 곳이었는데. 명절 당일마저 한 번도 쉬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바로 전날까지도 멀쩡히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유리창 위에 메모 한 장이 붙어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올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다. 지난주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던 돈가스집이 문을 닫았다.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많다. 아파트 상가에 있던 독특한 풍미의 만두가게, 골목 어귀의 소담한 가정식집, 가성비가 좋았던 샤브샤브집. 모두 어느 틈인가 사라졌었다. 물론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사장이 심경의 변화로 업종을 바꾸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더 잘되어 나갔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의 삶에 코로나까지 더해진 지난해를 떠올려보면 자꾸만 생각이 안 좋은 방향으로 달려가곤 한다. 사장과 종업원들, 그리고 수입이 끊긴 프리랜서들, 직장에서 쫓겨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런 엄동설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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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를 읽으면서 주인공들의 얼굴에 그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루리의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는 독일의 유명한 설화 ‘브레멘 음악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당나귀, 바둑이, 야옹이와 꼬꼬댁은 각각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주인이 이사를 가야 한다는 이유로,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리고 노점에서 불법 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목적지를 잃고 정처 없이 헤매던 그들은 도둑들이 모여있는 어느 집에 당도하게 되는데, 동물들의 사연을 들은 도둑들은 되묻는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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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살 걸 그랬다’고 후회하던 도둑들과, ‘어차피 이리될 거 무엇 때문에 그리도 열심히 살았나’라고 후회하던 동물들은 서로의 삶을 보며 더욱 절망에 빠진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시대에 대한 영리하고 절묘한 은유라고도 할 수 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 갈 곳을 잃은 사람들,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 세간에서는 흔히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실패해도 최선을 다했으면 괜찮은 거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 말은 사실 공허하다. 사람이 가장 절망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건 다름 아닌 해도 안 된다는,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아닐까.


가뜩이나 울적한 현실에 그림책까지 울적한 것을 보아야 하냐고 불만을 내뱉을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사실 우울하지만은 않다. 비록 앞서 어두운 이야기를 실컷 떠들긴 했으나 우울한 가운데 코믹하고, 어두운 가운데 희망적이기도 하다. 한집에 모여 절망에 빠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들은 어쨌든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각자 가지고 있는 재료를 총동원하여 맛있는 식사를 차려낸다. 식사를 차려서 먹는 동안 이러다 어쩌면 다 같이 식당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에 이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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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이 그림책은 어쩌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종의 나침반이 되어줄는지도 모른다. 삶이 우리를 배신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웃음이 남아있다는 것, 우리는 끊임없이 쫓겨나고 밀려나고 버림받지만, 그렇게 무너지고 쓰러지는 와중에도 결국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것을 나누고 부족한 것을 메꾸는 그런 연대가 우리를 구할 거라는. 그런 세상에서라면 우리는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비록 브레멘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한승혜_작가,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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