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간’을 보내는 당신에게

그림책 선물 1

by 행복한독서


우리는 지금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또한 예측할 수 있는 시간을 산다. 강의는 취소되었고 그림책 모임도 미뤄졌다. 물론 행사도 약속도 사라졌다. 그런데 멈춘 시간이 길어지자 생각하지 못한 시간이 만들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만들어진 예측 가능한 시간 말이다. 처음 생긴 시간들! 이런 시간을 무어라 부를까? 단순히 시간이 생긴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시간이 사라지고 언제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시간들 말이다. 그러자 난 ‘이다음에’ ‘언젠가’ 하고 생각만 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것이 하필 모두들 불행한 코로나라는 시간 속이었지만 그래도 난 그 시간을 만들어 살고 싶어졌다. ‘나의 코로나 시간’ 말이다.


“일요일 아침, 아무 할 일이 없어서 히로는 구덩이를 파기로 했다.”“펄은 학교가 끝났는데도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줄리어스 어디 있니?”


구덩이.jpg ⓒ북뱅크(『구덩이』)


일요일 아침, 아무 할 일이 없어서 구덩이를 파기로 한 그림책 『구덩이』의 히로. 학교가 끝나도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기웃거리는 『멋진 뼈다귀』 주인공 펄, 그리고 밥 먹을 때마다 어디 있는지 몰라서 어디 있는지 찾아야 하는 『줄리어스, 어디 있니?』의 줄리어스! 밥을 먹을 때마다 줄리어스는 집에 없다. 엄마랑 아빠는 줄리어스가 어디 있는지 서로 묻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 주인공들이다. 이 그림책 주인공들은 자기 시간을 만들어내고 그 시간에 남들이 볼 때 딴짓을 한다. 딴짓을 하는 주인공들은 누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남들 눈에는 쓸데없어 보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일을 주저 없이 한다. 혼자서 말이다. 지금 주인공들은 혼자 있다.


펄과 히로는 혼자 구덩이를 파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봄을 만난다. 이쁘기만 하다. 구덩이를 열심히 파던 히로는 구덩이를 다 파고는 다시 그대로 덮는다. 이제 구덩이는 흔적도 없다. 하지만 히로의 마음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아무 할 일이 없어서 구덩이를 파기로 했다.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은 자기 나라 수상에게 책과 편지를 보내기로 한다. 그는 많은 문화 정책들이 나빠지는 것이 문화에 대한 수상의 이해 부족이고 이것은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가 보낸 책은 대부분 소설이었고 그림책도 있었다. 그러니까 문학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함께 보낸 편지에서는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라는 기능적인 문제보다 ‘이것은 왜 이렇고 저것은 왜 저럴까?’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빈둥거리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에 문학을 읽으라고 말이다.


펄은 집에 가는 길에 숲속에서 봄 풍경을 만난다. 숲속에 봄이 온 것이다. 어제는 분명 이러지 않았는데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그러니 펄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펄은 그런 아이다. 펄은 그 숲에서 봄바람을 느끼고 꽃향기를 맡다가 자기도 모르게 “아 너무 좋아”라는 혼잣말을 하고 그러다 멋진 뼈다귀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름다움 앞에서 나온 펄의 ‘아 너무 좋아’는 뼈다귀와 말을 하게 되고 또 다시 다른 세계로 가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그리고 펄은 모험을 떠난다. 모든 아이들이 바라는 그 세계로 말이다. 시작은 봄 풍경이었다. 열심히 구덩이를 파던 히로는 구덩이에 가만히 앉았다. 조용한 구덩이 안에서 흙냄새를 맡고 벽에 생긴 삽 자국을 손으로 만져본다. 그리고 “이건 내 구덩이야”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시간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펄도 히로도 시간을 만들어내고 그 시간에 딴짓을 한다. 그 딴짓은 자기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고 자기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는데 자연을 만나고 자연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자연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자연을 경험하는 시간은 이렇게 빈둥거릴 때이다. 빈둥거리다 자연을 만나고 자연처럼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 우리가 잊고 있는 아이들의 속성이다.


『멋진 뼈다귀』와 『구덩이』가 빈둥거리는 시간에 자연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다면 『어떤 약속』과 『아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 『부엉이와 보름달』은 시간을 만들어 아빠와 함께 자연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우주와 자연의 이야기

세 권의 그림책 모두 표지가 푸른색이다. 조금씩 다른 푸른색이 다 아름답다. 눈도 시원해진다. 같은 푸른 하늘이라도 밤하늘은 더 깊고 푸르게 보인다. 표지가 푸른색이라는 공통점 말고도 주인공들은 지금 어딘가를 가고 있거나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그 옆에는 아빠가 있다. 그러니까 세 권의 그림책은 깊고 푸른 밤 아빠와 어딘가를 가고 있는 이야기 그림책이다. 『어떤 약속』을 빼면 아빠와 주인공 둘이서 우주를 보러가거나, 보름달 뜨는 날 부엉이 소리를 들으러 간다. 『어떤 약속』은 해가 뜨는 것을 보러 가족 모두 숲을 지나 산에 오르는 이야기다. 부엉이 소리와 우주 그리고 해 뜨는 것을 보려면 이렇게 깊고 푸른 밤에 길을 떠나야 한다.


어떤약속.jpg ⓒJEI재능교육(『어떤 약속』)


오늘이 약속한 날이다. 약속은 해 뜨는 것을 함께 보러 가는 것이다. 자다 일어난 아이들은 두말없이 일어나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서자 마당에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붓꽃과 인동덩굴 꽃향기가 풍겨온다. 동네를 지나면 시골길에선 마른 풀 냄새가 나고 메뚜기 소리가 들려온다. 이끼 냄새, 나무껍질 냄새, 와직와직 마른 나뭇가지 소리, 그리고 호수와 숲속의 빈터를 지날 때 조용히 풀밭에 누워 본 밤하늘. 『어떤 약속』이야기다. 마침내 “우리는, 서로 껴안은 채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아요.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예요.”


해가 떠오르는 하루가 시작되는 약속의 자리 앞에서 가족들은 숨을 죽이고 껴안는다. 심장소리만 들렸을 것이다. 생명의 소리 말이다. 이렇게 마지막에 가족은 가슴으로 만난다. 하루가 시작되는 눈부신 순간을 가족이 함께 생명을 확인하는 것도 더없이 멋진 일이지만 여기까지 함께 걸어온 길도 만만치 않다. 집을 나서며 만났던 밤의 소리, 밤의 냄새, 밤의 모양과 자리를 말이다.


뿐만 아니라 『부엉이와 보름달』 『아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에서도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아들이 부엉이와 우주를 만나는 순간도 기막히지만 만나러 가는 길도 아름답기만 하다. 가는 길에 만난 동네, 동네 사람들, 동네 사람들이 하는 일, 그리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보리와 달팽이, 작은 웅덩이에서 본 하늘 이 모두가 아버지가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고 이것이 바로 우주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 이야기 속에서 전해진다.


아빠가우주를.jpg ⓒ크레용하우스(『아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에서 “우리가 학교나 TV에서 얻는 배움의 형태는 ‘앉아서 흡수하는 형태’다. 그러나 가족의 삶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직접 배운다. 배움은 ‘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위대한 이탈리아 소설가이자 자연주의자인 이탈로 칼비노는 새로운 지식을 아버지에게 배웠으며 그 지식은 하나하나의 나무, 하나하나의 새들에 담긴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칼비노는 “새로운 지식은 구술로 전해지는 지식을 보상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최고의 지식은 자연에 담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은 것이었다고 말이다. 마치 세 권의 그림책 속 아버지와 아이들 이야기 같다. 아버지들은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서고 산에 올라 해가 뜨는 것을 혹은 밤하늘 우주를 본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무슨 말을 했을까? 결코 집안에 ‘앉아서’가 아니라 집을 나와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것’일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지식이 전달된다. 이렇게 함께 이야기할 때 지식은 전달될 뿐 아니라 그 지식은 가장 오래가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하는 것 속에서 아버지가 들려주는 우주와 자연의 이야기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혹은 딸에게 또 그 아들과 딸로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원인을 찾던 많은 이야기들이 지금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 일이 어디서 왔는지?’는 점점 사라지고 다시 옛날의 일상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올까? 다시 오기는 할까?


깊은 밤 숲속에서 어느 아버지는 딸에게 들려주고 싶어 부엉이를 불러내고, 또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별자리 이름을 불러준다. 그리고 『어떤 약속』의 가족들은 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자연 앞에서 감탄하고 숨죽이는 경험들! 가족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 가족들에게 배우는 것이 점점 사라진다. 자연의 이야기도 전해지지 않는다. 자연의 이야기가 사라질 때, 그것을 전해주는 가족 속의 배움이 사라질 때 자연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힘든 겨울이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만들어 그 시간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 그리고 부엉이 소리를 들으러 혹은 우주를 보러가는 약속을 해보면 어떨까? 비록 지금은 집에 앉아서 책을 읽겠지만 봄이 오면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산에 오르며 그 길에서 만난 나무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리고 그 나무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봄을 꿈꾸게 할 그림책을 선물하고 싶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당신에게 무엇보다 아버지들에게 이 책들을 선물하고 싶다.



김영미_『그림책이면 충분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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