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의 눈으로 본 세상

상자 세상

by 행복한독서

상자 세상

윤여림 글 / 이명하 그림 / 60쪽 / 15,000원 / 천개의바람



우리의 일상은 필요한 물건을 사서 쓰는 ‘소비’의 연속이다. 소비의 형태도 비대면 문화가 지속되면서 달라졌다. 직접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해서 택배로 ‘배송’ 받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그림책 『상자 세상』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택배 상자의 눈으로 본 상자 밖의 이야기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뿐 아니라 판형이나 종이의 질감 같은 물성으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주인공 ‘상자’의 얼굴을 한 표지, 송장 스티커에 써진 글·그림작가의 이름, 뒤표지의 재활용 표시, 반들반들 상자 테이프 느낌의 책등에서 그림책 한 권에 들인 꼼꼼한 정성이 느껴진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받아든 어느 날, 집 안 여기저기 쌓여있는 상자들이 세상을 먹어 치우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 이미지 속 상자들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장면은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만 쏙 꺼내고 창문 밖으로 상자를 던진다. 수북이 쌓인 어마어마한 상자들이 세상을 먹어 삼키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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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가 쓰고 버리는 상자들을 한 공간에 모아본다면 정말 산처럼 쌓이지 않을까? 그림책에 등장하는 ‘상자’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욕심에 의해 만들어지고 쉽게 버려지는 옷, 장난감 등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빨리 만들어서 빨리 팔고, 쉽게 쓰고 쉽게 버려지는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많아진 쓰레기를 줄여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물건을 대하고, 소비하는 방식, 살아가는 속도를 고민해보자고 그림책이 넌지시 말을 걸고 있는 게 아닐까?


다소 묵직할 수 있는 주제의 그림책이지만 아이들은 쉽고 편안하게 다가간다. 바로 ‘띵동, 휙휙, 퍽, 꿈틀’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 중심의 짧은 대화로 이루어진 이야기와 만화처럼 칸이 나뉘는 구성, 말풍선으로 표현한 그림 덕분이다. 특히 아이들은 상자를 열듯 양쪽의 종이를 펼쳤을 때 상자에 담긴 물건이 나오는 장면을 좋아했다. 상자가 사람처럼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상상의 요소가 들어가서인지 아이들은 이야기에 금세 몰입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도착하는 첫 장면이 반복된다.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나고,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림책을 덮고 나니, 문득 책 한 권을 주문해도 커다란 상자에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리 집에 오는 택배 상자가 생각났다. ‘상자와 테이프를 덜 쓰는 포장 방법은 없을까?’ ‘동네책방에 가서 그림책을 사올까?’ 예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그림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재미있어서, 어떤 이는 시대를 반영해서 좋다고 한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그림책은 일상을 되돌아보고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한다. 『상자 세상』은 그림책이 주는 ‘건강한 상상력’을 담은 진지하고 유쾌한 책이다.


신현주_서울중원초 교사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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