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 먹고 싶으면

붉은 속 내보일 때까지

by 행복한독서

수박이 먹고 싶으면

김장성 글 / 유리 그림 / 48쪽 / 16,500원 / 이야기꽃



“아이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 교사는 영혼에 울림을 주는 존재야.”


어릴 적 부모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몸소 봉사하는 삶을 보여주셨다. 늘 아이들 운동화 흙먼지로 범벅이었던 승용차 뒷좌석의 시트, 아픈 허리로 기어코 번쩍 들어 옮기던 커다란 국통…. 나는 부모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허리를 낮추고 고생하는 게 속상했다. 교육학을 공부하며 만난 루돌프 슈타이너도 같은 말을 했다. “교사는 영혼의 예술가다.”


그러나 교단에 서니 아이들의 영혼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저 손에 쥐어지는 씨앗이 아니었다. 심고 가꾸어야만 겨우 맺힐까 말까 한 열매와 같았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은 그런 성장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흙 이불을 살살 덮어주는 시간, “수박 싹 제가 절로 난 줄 알도록” 무심한 듯 모른 척해주는 시간, 북돋워 물을 뿌려주면서 짠 땀을 뚝뚝 떨어뜨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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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시절을 고스란히 보내면 둥글게 영근 순간을 만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슬며시 자신을 내보여주는 순간들이다. 엉킨 실타래 같은 속을 내보이며 그 매듭을 스스로 풀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를, 내면의 어둠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발견했다는 아이를 만났다. 그렇게 미끄러져 나가듯 서로에게 붉은 속을 내보이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씨앗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흙을 밟고 갈아엎는 쭈글쭈글한 맨발의 뒤꿈치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이 첫 장면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발바닥에서 뒤꿈치를 타고 이어지는 그 잔주름 하나하나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 발에 밟히고 쟁기에 갈리는 붉은 흙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다. 땅을 부드럽게 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먼저 하얀 캔버스에 꼼꼼하게 젯소칠을 해야 하듯이, 그 어떠한 씨앗을 위해서라도 흙을 갈아엎어 바탕을 마련하는 일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주름진 발바닥으로 내 안을 밟아 다시 부드럽게 하는 심정으로 매년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땅에 또 스무 개 남짓의 씨앗이 심길 것이다. 고단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열매를 사모하며 나의 연약함과 다시 치열하게 마주해야 한다. 아이들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올해도 자연스럽게 서로 붉은 속을 내보일 때까지 다시 또 기다려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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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_서울홍릉초 교사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7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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