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찾으러 가는 까만 밤의 속삭임
깜박깜박 스르르르
문승연 글·그림 / 36쪽 / 12,000원 / 딸기책방
어린 시절 유난히 겁이 많던 나는 밤을 좋아하지 않았다. 깜깜한 어둠도 무섭고 잠을 자는 것도 싫었다. 밝은 낮이 계속되는 나라가 있다면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 밤이 오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아도 되겠지. 나만 자고 모두 재미있게 노는 것도 싫지만 나만 빼고 모두 잠들어 버린다면 그건 더 싫었다. 어둠 속에 나 혼자만 남겨진다니 생각만 해도 외롭고 무서웠다. 한 번 잠들고 나면 다시 깨어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는 걸 알기는 하지만 확실히 믿을 수는 없다. 가끔 획 뒤돌아보며 내가 보지 않아도 세상이 그대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던 나이였다.
아이들은 실제로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잠과 죽음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매일 죽을 각오로 잠자리에 드는 건지도 모른다. 어른에게는 고난과 죽음이라는 문학적 상징의 밤이 어린아이에겐 매일의 현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매일 자고 일어나고 또 자고 일어나 성장해 간다는 것이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무섭기만 하던 어둠을 나는 언제부터 신비롭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밤이 지나면 새 아침이 온다는 걸 의심하지 않고, 밤의 정적을 고요한 평화와 휴식이라 느끼게 되고, 어둠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빛나는 것들을 사랑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나로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었던 어둠. 오늘 밤도 어린 시절 나처럼 불안하고 자기 싫은 아이들이 있을 텐데. 아이 곁에 있는 사물들의 이름을 불러 그들이 있으니 안심하라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까만 밤의 주인인 양 으스대며 걷는 까만 고양이와 검푸른 하늘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밤의 아름다운 면들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어둠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는데, 신비한 느낌과 우연성을 살리기 위해 마블링 등 여러 실험을 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한지 뒷면에 어두운색을 칠해 전면에 배어나오도록 하고 색을 여러 차례 얹는 동양화 분채 물감을 썼더니 어둠이 스민 다양한 색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기본적인 그림 스타일을 결정한 후, 겹치고 스미는 효과를 더 살리기 위해 거즈에 흰색을 롤러로 밀어서 판화기로 찍어보았는데 내가 찾던 바람의 형상이 드디어 나타났다. 아주 먼 곳에서 불어와 내 주변의 것들을 돌아 숨이 되어 내 몸속까지 들어왔다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바람은 가장 중요한 캐릭터였다.
달맞이꽃을 지나 발뒤꿈치를 들고 가던 바람이 완성되자 노란 달빛 속의 새앙쥐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커다란 검은 날개를 가진 잠의 새는 무의식에서 건져 올린 형상으로 그리고 싶었다. 잠의 새가 다가오면 졸기 시작하고 사물은 더 겹치고 안과 밖도 뒤섞인다. 아이는 안 자려고 필사적으로 버티지만 결국 깜박깜박 스르르르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잠을 자기로 한 것이 너에게 얼마나 대단한 결심인지 알고 있단다. 낯익은 동네의 빵집과 소방서와 버스 정류장만이 아니라 낯선 거리와 낯선 하늘과 별들을 지나 아득히 높은 산과 큰 강을 건너야 하는 멀고 험한 여행이겠지.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그 길엔 아름다운 것도 많고 무엇보다 너는 안전할 테니까. 우리 모두 같이 갈 거야. 오늘의 끝이 아니라 내일의 시작으로. 깜박깜박 스르르르 아침을 찾아서 우리 모두 같이 떠날 거야.
초고에서 이 책의 제목은 ‘아침을 찾으러 가요’였다. 최종적으로 『깜박깜박 스르르르』로 결정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밤을 아침과 연결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거다. 죽음이 생명을 통해 의미가 되는 것처럼 밤도 아침이 포함될 때 더 선명하고 아름답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침이 온다고 믿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어려운 시기들도 있었다. 어두운 밤, 아침을 찾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한편에 있다. 그런 마음을 잘 아는 내 오랜 지인들이 내가 사는 강화에 딸기책방이라는 책방 겸 출판사를 차려서 이 책을 자신들의 첫 책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 지역의 작은 출판사가 가진 한계가 있겠지만 오랫동안 출판계에서 일하다 이 나이에 여기 모여 함께할 수 있음이 기쁘기도 했다. 젊은 시절 그때처럼 사소한 것까지 의논하며 책을 완성하는 과정도 즐거웠다.
책이 나오고 가끔씩 내게 아이들 어렸을 때 어떻게 재웠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다지 좋은 엄마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좋은 추억들이 남아있다. 이불 속에서 아이들과 깔깔거리고 웃던 기억, 아이들을 품에 끼고 그림책을 읽어주던 기억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다. 누군가의 행복한 시간 속에 『깜박깜박 스르르르』가 함께 기억되기를 소망해본다.
문승연 작가는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쓰고 그립니다.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에 글을 썼고 『냠냠냠 쪽쪽쪽』 『찾았다!』 『안녕, 달토끼야』 『달토끼의 선물』 『아리의 빨간 보자기』를 쓰고 그렸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