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고 상상하고 발견하라!

조금 낯선 그림책 이야기1

by 행복한독서

사실 우리 출판사에 낯선 나라에서 온 그림책이 많다는 것을 잘 몰랐다. 정말 그런가 살펴보니, 다양한 나라에서 오기는 했다. 『없는 발견』 『슬픔을 만난 개』는 라트비아, 『겨울이 궁금한 곰』은 우크라이나, 『넘어져도 괜찮아!』는 브라질, 『친절한 호랑이 칼레의 행복한 줄무늬 선물』은 스위스다. 국적도 그렇지만 그림책의 글로도 낯선 것들이 있다. 포르투갈 그림책 『발터 벤야민의 수수께끼 라디오』는 라디오 방송 대본을 그림책으로 재구성한 작품이고, 이탈리아 책인 『어린이의 권리를 선언합니다!』는 ‘세계아동권리협약’을 그림책으로 꾸린 책이다.


『없는 발견』은 눈 덮인 마당에 있는 노란 우체통에 잡지를 가지러 나온 찰스 다윙 씨가 마당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점점 늘어나는 발자국의 정체를 궁리하는 과정이 병렬식으로 나열된 이야기이다.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발자국이 늘어가면서 점점 다양한 미지의 존재들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한 줄로 난 발자국의 정체는 무엇일까? 몽유병에 걸린 앵무새 캐롯이 한쪽 발로 마당을 돌아다닌 흔적일까? 다리를 다친 사람이 깨금발로 뛴 흔적일까? 한 줄로 이어지던 발자국은 계속해서 두 줄, 세 줄로 늘어가고 다윙 씨가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도 무한히 늘어난다.


없는발견.jpg ⓒ봄볕(『없는 발견』)


흔히 ‘발자국 네 줄=다리가 네 개인 생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윙 씨의 상상력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훌쩍 뛰어넘는다. 다섯 줄짜리 발자국은 ‘팔’이 다섯인 불가사리의 흔적일 수도, 아니면 한쪽 발을 다쳐 세 발로 걷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발이 둘인) 사람일 수도 있다(강아지 발자국 셋+사람 발자국 둘). 아니면 반대로 한쪽 손을 다친 채 나머지 두 다리와 한쪽 손으로 기어가는 사람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의 흔적일 수도 있다. 다윙 씨의 상상은 두 줄, 세 줄… 열 줄로 난 발자국 들을 연이어 발견하면서 작은 발자국 위에 자신이 추측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을 고려해 점점 더 다양한 존재들의 조합으로 진화를 거듭한다.


‘발견’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물이나 현상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대상을 ‘발견’했다고 하면 그것으로 그 사물의 성질이나 특성을 도장 찍듯 확정하고 규정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미 ‘발견’했으므로, 대상에 대한 상상력은 ‘발견’이라는 선언에서 멈추고 만다. 대상의 확장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없는 발견』의 진짜 주인공 찰스 다윈은 ‘자연’이 어떤 실체가 아니라, 여러 법칙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의 몫인 ‘발견’ 역시 비밀의 궁극적인 실체가 아니라 바로 끊임없는 상상의 여정, ‘발견의 과정’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견’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바로 ‘질문’이다.


『발터 벤야민의 수수께끼 라디오』는 발터 벤야민이 1932년 7월 6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방송 대본으로 쓴 글을 그림책으로 재구성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알쏭달쏭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시 한 편으로 시작한다. 시의 형식을 갖춘 이 글은 얼핏 보면 그럭저럭 말이 되는 듯 보이지만 그저 각각의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아무렇게나 배치해놓았다.

주인공 하인즈 씨는 도시를 산책하며 하나씩 보게 되는 기이하고 이상한 풍경들의 몽타주로 구성하고 있는데 이런 특징들은 비록 라디오 방송의 목적으로 쓰인 글이지만 그림책의 서사 전개 방식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하인즈 씨가 애초에 이야기가 시작되는 계기이자 목적이었던 첫 수수께끼 푸는 일은 뒷전으로 밀쳐둔 채 또 다른 문제들에 골몰하는 모습은 듣는(읽는) 이들로 하여금 어리둥절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첫 장면에서 벤야민이 ‘질문에 너무 집중하지 말 것, 그리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오류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한 의도 또한 유쾌하고 명료하다. 어차피 삶이 계속되는 한 질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완벽하지 않을 것이므로!


발터벤야민.jpg ⓒ봄볕(『발터 벤야민의 수수께끼 라디오』)


발터 벤야민은 도시의 사소하고 파편적인 일상 풍경을 담백하게 서술하며 사소한 풍경들 속에서도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예민하게 포착해내어 현실을 비판적이면서 능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주체로 자신의 삶을 소화할 것을 요청한다. 그림책에는 언어가 만들어낸 세계를 넘어선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세상이 있다. 바로 ‘그림’이라는 ‘조형 언어’의 세계다. 마르타 몬테이로는 벤야민의 개성적인 글쓰기 스타일과 그 내용에 담긴 유머를 이미지로 구현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느리게 걷는 산책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도시의 풍경과 인물들은 흔들리듯 리듬 넘치는 선과 감각적이고 독특한 색의 조합으로 표현한다. 한 화면 안에 긴 시간의 흐름을 분할해 담거나 여러 시점을 한 시점으로 포착한 기법은 마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 양식을 보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봄볕 그림책의 주요 키워드는 호기심과 상상력에 바탕을 둔 사람과 세계, 삶에 대한 ‘발견’과 ‘질문’이다. 호기심은 낯선 것에 대한 관심이다. 의미 파악조차 불가한 낯선 언어, 그림만으로 읽어내야 하는 그림책을 겁도 없이 계약하고 책을 만든 이유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끌어당긴 ‘호기심’ 외에는 다른 답은 없는 것 같다.


온통 눈으로 덮인 길 위에 찍힌 발자국 하나, 흑백의 강렬한 대비가 주는 강렬한 그 이미지에는 수많은 드라마가 담겨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상상하고 발견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단 ‘질문에 너무 집중하지 말 것, 그리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오류를 찾아낼 것’을 잊지 않으면서!


권은수_도서출판 봄볕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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