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낯선 그림책 이야기2
‘아시아의 이야기’ 그림책 시리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10년 넘게 중앙아시아와 교류하면서 함께 만든 책이다. 중앙아시아 작가들이 글을 쓰고, 한국의 그림작가들이 그림을 그렸다. 중앙아시아의 오래된 이야기와 한국 그림작가들의 현대적이면서 개성 있는 표현 기법이 어우러져 완성됐다. 2009년부터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이 다섯 나라와 교류를 이어오면서 2017년 10권을 시작으로, 2018년과 2019년에 5권씩 그림책을 만들었다.
나라들 이름에서 ‘스탄’은 ‘땅’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이름만큼이나 그 땅의 모습도 다양하고 또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실크로드를 따라 생기고 사라졌던 이 나라의 도시들에서는 그 긴 시간을 담아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심부에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나라로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둘러싸여 있고, 북서쪽엔 아랄해를 접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중심 교역지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기후가 건조해서 여름은 뜨겁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도 땅에 닿기도 전에 말라 버리는 마른 비가 된다. 『나의 구름 친구』(무하바트 율다쉐바 글 / 소윤경 그림)에서 바람 아저씨와 천둥 할아버지가 비를 내리러 가는 곳이 우즈베키스탄이다. 그래서 “생각하고, 꿈을 꾸고, 친구를 사귀는 능력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저자의 말이 더 간절히 들린다.
산이 많아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에는 산 아래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나무가 울창한 산기슭에는 수많은 야생동물이 살아간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유르트’라고 하는 둥근 천막집을 짓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유목 생활을 했다. 『초원의 나라를 지키는 아산과 우센』(베크 즈일드이즈 글 / 슈니따 그림)은 전쟁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과 사랑을 잃지 않고 평화로운 ‘초원의 땅’을 지켰던 쌍둥이 형제의 전설을 담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나쁜 일들이 많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는 전쟁이 벌어진다. 『초원의 나라를 지키는 아산과 우센』은 좋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돌아가고, 아이들이 이 세상을 좋게 만들고 전쟁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동쪽으로는 카스피해, 서쪽으로는 몽골까지 길게 뻗어있는 커다란 나라 카자흐스탄은 한반도 크기의 열두 배나 된다. 넓은 초원과 산, 사막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땅에서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살아간다. 『약속의 땅을 찾아서』(두이센 케네스 오라즈베쿨리 글 / 홍승연 그림)에는 ‘아산 카이그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15세기에 살았던 그는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기후가 온화한 ‘제루유크’를 찾아서 낙타를 타고 드넓은 카자흐스탄 땅을 돌아다녔다. 제루유크는 사람들이 슬픔도 원한도 가난도 없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해 애를 쓰던 시대였다. 이 책의 주인공인 고슴도치와 날 쥐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동식물을 보호하고, 사랑하고 보살펴 달라고 이야기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은 한반도의 두 배가 넘는 땅이지만 대부분이 카라쿰사막이어서 중앙아시아에서도 물이 가장 귀한 곳이다. 낙타와 말, 당나귀는 모두 사막과 초원을 오가며 살아간다.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이 왜 낙타를 ‘사막의 배’라고 부르고 말을 ‘하늘의 말’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다. 『지금, 바로 여기』(레일리 나스이로바 글 / 계명진 그림)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놀라운 자연을 배경으로 멋진 동물이 되고 싶은 당나귀의 모험을 통해, 우리가 인생에서 행하는 모든 일과 이어지는 사랑에 관해 말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누구나 멋진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림책 속 히말라야산맥에서 이어지는 타지키스탄 영토의 대부분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이 차지한다. 맑은 물이 솟아나는 고원지대와 빙하가 쌓인 산맥, 달콤한 과일은 이 나라의 자랑이다. 타지키스탄은 용감한 페르시아 민족의 후예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긴 정착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위대한 전설 테무르말릭』(타흐미나 우바이둘로예바 글 / 이명애 그림)은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용감히 나라를 지켜낸 타지키스탄의 역사를 담고 있다. 험준한 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용기와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내용은 각양각색이지만 모두가 오래된 땅 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다. 나무와 풀이 자라듯 이야기도 땅에서 자란다. 척박한 사막은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아시스처럼 흘려보내고, 바다 같은 초원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생명을 더하고, 치솟은 산맥은 온갖 사람들의 행복과 슬픔을 품어낸다.
‘아시아의 이야기’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아직 이 세계에는 찾아가야 할 낯설고 신비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며 지리적 감수성을 길러준다.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알면 내가 갈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려면 이 세상에는 다양한 공간과 시간과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 역을 지날 때마다 흙의 색이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비행기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지금 세상의 풍경을 쓸어가는 인터넷 세계에서는 세계의 풍경이 매끈하고 평평하게 모니터에 흘러간다. 하지만 지구는 결코 평평하지 않으며, 한 번의 시선으로 온전히 알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나의 두 발로 찾아가 만나야 하는 곳이다.
우리는 다른 종교와 문명의 생각과 감정을 살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깊이가 깊어진다.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글작가들이 한국에 오고, 한국의 그림작가들은 중앙아시아로 떠난다. 이 책들은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 먼 옛날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오가며 실크로드라는 지구의 등뼈를 만들었을 것이다. 서로 영원히 같아질 수 없는 낯선 존재가 서로에게 다가갈 때, 자신은 변화하며 새로운 창조물이 나온다.
‘아시아의 이야기’ 그림책은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가이드북이다. 이 책들은 저 너머에 아직도 미지의 영토가 존재함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알려준다.
허택_아시아문화원, 연구기획팀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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