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낯선 그림책 이야기4
해외 그림책을 출간하려면 맨 처음 우리나라에 어떤 책을 소개할 것인가를 기획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덕분에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그림책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노르웨이 작가 마리 칸스타 욘센을 만난 건 몇 해 전 연남동의 작은 책방에서였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북유럽 그림책이 책방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섬세한 그래픽이 돋보이는 북유럽 그림책 중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 가슴이 쿵쿵 울렸다. 천둥 같은 감동이 몰려왔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 거침없는 선, 단순하면서도 자유로운 그림. 바로 마리 칸스타 욘센이었다!
마리 칸스타 욘센은 직관적인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그래픽아트의 경계를 넘나든다. 도무지 4도 인쇄라고 믿어지지 않는 화면을 압도하는 강렬한 색과 거칠면서도 힘과 율동감이 넘치는 선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풍부한 시각예술 세계를 선보이며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앙리 마티스를 떠오르게 한다.
다양한 시각적인 요소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전달하는데, 말풍선을 사용하거나 하나의 페이지에 여러 프레임을 사용하는 만화적인 기법으로 인물의 심리 변화와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비현실적으로 과장되거나 축소된 크기와 형태, 색과 위치 등으로 그림에 유도된 긴장을 불어넣어 인물과 상황에 관한 정보를 전달한다. 심리묘사와 감정 전달이 뛰어나며, 인물이나 동물도 정형화된 이미지가 아닌 독특하게 표현해 겉모습에서 보이는 고정된 생각이나 역할에서 벗어나 다름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돕는다. 섬세한 유머와 기발한 상상력이 넘치며, 흐트러진 듯 균형을 잡는 장면은 자세히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빛이 나는 것같이 신비롭고 환상적인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상징과 같은 장면으로, 에어브러시를 사용한 것처럼 번지는 듯한 기법으로 마치 불이 환하게 켜진 것 같은 느낌을 주며 탄성을 지르게 한다. 『터널』의 평화롭던 생태계를 침범한 자동차 불빛, 『안녕』의 외로운 소녀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던 토끼, 『3 2 1』의 멋진 여행 이야기를 대신할 토끼 인형이 그렇다. 『나의 작고 커다란 아빠』에서는 겁이 많은 마야가 혼자 용기를 내어 산 아이스크림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마리 칸스타 욘센은 따뜻한 유머로 그림을 읽는 순수한 행복을 선물한다.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지만,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며 성장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담는다. 주인공은 외로움, 불안, 분노, 두려움 같은 자기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오롯이 마주하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견디고 겪어내며 성장한다.
마리 칸스타 욘센의 작품 중 책빛에서 처음 출간한 작품은 『터널』이다. 그 후로 『안녕』 『3 2 1』 『나의 작고 커다란 아빠』까지 총 네 권의 그림책이 나왔다. 노르웨이 최고의 그림책으로 인정받은 작품들로, 모두 노르웨이 문학 번역원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출간했다. 기쁜 소식은 앞으로 소개할 그의 그림책이 더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출간한 작품을 간단히 만나보자.
『터널』은 시인이자 작가인 헤게 시리가 글을 쓰고 마리 칸스타 욘센이 그림을 그린 책으로 환경파괴와 로드킬 문제를 이야기한다. 터널을 파는 두 마리 토끼를 따라가며 자연과 동물, 인간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공감을 시적인 문구와 아름다운 일러스트에 훌륭하게 담아냈다.
『안녕』은 작가의 첫 번째 글 없는 그림책으로 ‘외로움과 성장’이라는 주제를 대담한 스케치와 아름다운 색감에 훌륭하게 담아냈다. 『안녕』은 2017년 볼로냐아동도서전 라가치상과 2018년 국제아동도서위원회 어너리스트에 올랐다.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페이지당 여러 프레임을 사용하거나 간단한 연필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색의 변화로 감정을 전달한다. 독자가 자유롭게 읽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 그림책이다.
『3 2 1』은 끝없이 수를 세고, 신기한 찾기 놀이의 마법에 빠져들게 하는 그림책이다. 토끼 인형이 사고 싶은 안나에게 할머니는 휴가를 떠난 이웃집에 남아있는 동물과 식물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안나는 원하는 물건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경제의 기본 원리를 배우며, 노동의 가치는 물질이 아니라 행복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작고 커다란 아빠』는 마리 칸스타 욘센이 그림책작가로 데뷔한 책으로 ‘노르웨이 아름다운 그림책’ 금상을 받은 작품이다. 여름휴가를 떠났지만, 낯선 환경이 두려운 겁쟁이 마야에게 아빠는 언제나 든든한 존재다. 그런데 그만 동물원에서 아빠를 잃어버린다. 엄청난 위기 상황에서 마야가 가진 고요한 에너지가 힘을 발해, 마야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움직인다. 마야는 자신을 찾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려 작아진 아빠를 발견하고 꼭 껴안는다. 서로 성향이 다른 아빠와 딸을 시각적 대비로 긴장을 주어 재미있게 보여준다. (marikajo.com)
김영은_책빛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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