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서 만난 그리운 초록

작업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 10 - 전소영

by 행복한독서
전소영작가-ⓒ전소영.jpg


처음엔 파주의 문산 읍내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자동차로 2차선 도로를 달려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것 같은 곳에 ‘문산주택’이라고 쓴 이색적인 천 깃발이 나풀거렸다. 길에 면한 작은 이층집 건물 1층에 공간은 둘로 나뉘어있었다. 한쪽은 작가의 작업실 겸 화실, 다른 쪽은 작가의 곁지기와 함께 운영하는 돈가스 전문 카페였다. 한적한 시골 길가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도 묘하게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난데없는 화가의 집을 동네 어르신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싶었다.


서울에서 벗어나 전국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이곳이 형편에 가장 맞아서 고른 집이었다. 특별히 눈에 띄지 않은 것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과 화분들이 그냥 자연스레 놓여있을 뿐 일부러 다듬어놓은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 들여다보면 작가의 작업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간명한 소품이 있는 작은 공간에서 색다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왜 초록을 느끼는 것일까.


내가 만난 풀다발은 항상 전지가위, 예초기와 함께였다. 눈에 보이는 대로 자르거나 그도 아니면 손으로라도 뽑아버려야 했다. 마당과 집 주변, 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무성히 자란 풀들을 보면서 틈만 나면 도구들을 들고 자르기 바빴다. 그러면서 손과 발에 풀들이 스친 자국을 씻으며 생각했다. 가렵고 따끔한 피부를 만지며 악착같이 돋아오르는 풀들에 대해. 강아지풀부터 민들레, 질경이, 엉겅퀴. 붉은토끼풀, 이름 모를 외래종 풀들까지 뒤섞인 곳에서 나는 늘 그랬다.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라고 말했다는데 이는 제임스 휘슬러의 「녹턴:배터시강」(1878년)을 두고 한 말이었다. 늘 자욱한 안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던 것을 화가의 그림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개를 발견했다는 얘기다.


『연남천 풀다발』(달그림)을 보고서 발견했다. 마치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안개처럼 그동안 내가 마구 잘라냈던 풀들이 참쑥, 산국화, 바랭이, 환삼덩굴, 속새, 애기똥풀, 소리쟁이 등 수많은 이름을 가진 풀들이었음을, 그리고 이 풀들이 내 앞에 그림으로 다가왔을 때 이들과의 공존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여름 연남동에서 땀띠를 참고 버텨가며 붓질을 해나갔을 화가의 ‘풀다발’은 어쩌면 풀이 아니라 땀의 결정체였다. 작가는 왜 흔하디흔한 도심 천변의 풀들을 그렸을까? “내가 살기 위해 그렸다”라고 한 얘기는 무척 절박한 환경에서의 다른 표현 같다. 그림 속 여린 이파리와 꽃잎들은 위태롭게 매달려 있지만 생명력이 강하다.


“그러고 보니 세상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에도, 작은 열매의 생김새에도 이유가 있다. 당장은 시리고 혹독하지만 지나고 보면 소중한 겨울처럼.”(『연남천 풀다발』)


그림 한 점씩 그리면서 뒷면에 직접 썼던 글들은 짧지만 깊은 통찰이 배어있다. 바로 이 글과 그림 한 점이 모여 그림책이 되었고, 만약 에세이였다면 이같은 생생한 수채 그림의 맛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연남천 풀다발』의 장면을 하나씩 바꿔가며 집 안에 펼쳐놓는다는데, 딸의 그림이기에 앞서 이 식물들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격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게 하는 힘을 발산한다. 특히 그림책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이중 실제본(사철제본)으로 완성했다. 거기다 접착 부위(책등)를 보호하기 위해 양장 표지 케이스가 둘러싼 책이다. 어느 부분을 펼쳐도 그림이 안으로 접히는 일이 없다. 곧 아무 장면이나 펼쳐도 온전한 한 폭의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다.


전소영-작업실-ⓒ정병규.jpg 전소영작가의 작업실 ⓒ정병규


어려서부터 그림 잘 그리는 딸을 위해 부모님은 묵묵히 성원해주는 절대적인 지지자였다. 사격과 태권도 선수 출신이었던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은 책을 좋아했고,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어른들이었다. 성적과 공부 얘기를 거의 듣지 않고 자랐을 만큼 이해의 폭이 넓고 자유로웠다. 초등학교 시절 재봉틀을 만지다가 바늘에 손톱이 찔렸을 때 어머니는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바늘을 빼주었다는 기억을 들려준다. 물론 당시에 어머니도 크게 당황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평정심은 놀라웠다. 부모님은 학교만큼은 함께 지방에서 다니기를 원했으나 그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서울로 진학했다. 예고 진학 때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해냈다. 이런 내면의 고집스러움이 원천이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이 학교에서 그림에 대한 바탕과 모든 기본기를 익혔다. 어떤 일을 함에도 주로 이렇게 마음이 가는 쪽이면 끝내 가는 것이었다. 감성의 움직임이었다.


두 번째 작품 『적당한 거리』(달그림) 역시 평소에 그림 그리듯 무엇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처음엔 엄마가 딸에게 조곤조곤 얘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구성하려 했으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감정이입이 잘 안되어 식물을 키우는 이야기로 바꾸었다.

그림책 중간쯤에 자리한 장면은 압권이다. 서울 창동의 어느 다세대 주택 3층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봉산 풍경이 펼쳐지는데,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일인칭시점이다. 책을 펼쳐 보이는 사람이 집 안에서 손에 잡힐 듯 도봉산을 품어 안는 구도와 함께 산과 노을빛, 하늘, 그 아래 도시의 풍경, 집 안에서 끄트머리가 살짝 올라와 보이는 식물, 이 모든 것은 담백한 농담의 조화가 가능한 수채화였기에 절대적 몰입이 가능하다. 또한 마지막 장면을 통해 식물의 생장처럼 사람의 관계 역시 ‘적·당·한·거·리’가 필요함을 이미 일 년 전에 놀라운 예지력으로 그림책에서 보여주었다.


산책하며 사색하는 실증주의 화가, 초록이 그립거든 문산주택을 찾아 작가의 그림 수강생이 되어도 좋겠다.



정병규_행복한그림책연구소 소장,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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