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상상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여정
혼자 있던 집이 마법처럼 푸른 숲으로 변했어요. 그곳엔 나와 눈이 닮은 사람이 있어요. 우린 어딜 가든 신나게 놀 수 있었지요. 함께여서 좀더 넓은 세상을 보았고 잊었던 내 얼굴을 찾았어요. 다시 집으로 돌아와도 괜찮아요. 우린 언제든 다시 만날 테니까요.
나
조수경 글·그림 / 40쪽 / 17,000원 / 한솔수북
그림책 『나』는 책 한 권에 이야기 두 개를 담고 있습니다. 공부에 지친 어린아이와 매일 반복되는 삶에 지친 어른이 각각 주인공입니다.
작업 초기 단계에서는 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종이책으로 어른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앱북(전자책)으로 만들어 서로 연동되도록 기획했는데, 작업을 진행할수록 두 가지 이야기를 한 권에 담는 방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부모와 아이 또는 친구들끼리 마주 앉아 한 권의 그림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종이책과 앱북에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담아 아이와 어른 이야기를 비교하며 볼 수 있도록 작업했습니다. 앱북에는 증강현실 기법을 사용해 특히 아이와 어른이 함께하는 숲과 바다, 우주 장면 등을 확장된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제작했습니다.
학교와 친구 그리고 공부에 시달린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아이의 발에는 파란 끈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으로 오는 길에서도 아이를 옭아매는 파란 끈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이가 커다란 발과 파란 끈을 발견하고 위를 보니 한 아저씨가 서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옭아매던 파란 끈은 이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끈이 되어 아이의 미래를 보여주며, 지금 겪는 많은 어려움이 미래의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아저씨는 아이에게 너의 현재가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말하며 “난 너의 미래”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거실을 온통 숲으로 만들어준 아저씨가 마법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아이의 눈에는 아저씨가 마치 마법사처럼 멋지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그런 아저씨를 따라 바다와 사막 그리고 우주를 여행합니다. 아이는 넓은 세상을 보고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옵니다. 파란 끈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이는 필요할 때면 언제든 아저씨가 곁으로 다시 와줄 거라고 믿게 됩니다.
사회생활에 지친 어른이 집으로 돌아와 가면을 벗습니다. 어른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춘 채 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가면을 쓰고 살던 어른은 어느 날 가면을 벗은 자신의 진짜 얼굴이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마치 얼굴이 사라진 것 같았지요. 좌절한 어른 앞에 하나둘 풀들이 돋아나고 어느새 거실은 숲으로 변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어른은 숲속에서 자고 있던 소년을 발견합니다. 어쩐지 자신과 눈이 닮은 소년을요. 어른은 소년의 손에 이끌려 바닷속과 사막을 여행합니다.
그때 삶에 지쳐 잊고 있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과 즐거웠던 감정들이 어른에게 동심을 되찾아줍니다. 동심을 기억하고 소년과 어릴 때처럼 물장난을 치며 놀게 되는 순간, 어른은 자신의 얼굴이 다시 생겨났음을 알게 됩니다. 소년은 어른의 과거 모습입니다. 어른은 소년이 언제나 자신 안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영국 유학 시절, 졸업 작품으로 기획한 ‘Being’이라는 어른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이 이야기를 새롭게 더해 그림책 『나』를 완성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동심을 잃어갑니다. 오히려 동심을 간직한 사람을 나약하거나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나를 맞춰갈수록 공허한 마음이 들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런 모습을 가면 쓴 사람이 점차 자기의 진짜 얼굴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얼굴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릴 적 나를 만나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일들을 기억하고 뛰어놀면서 활짝 웃는 진짜 얼굴을 되찾는 이야기는 『나』의 어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뒤로 어른의 이야기처럼 아이들도 작은 어깨 위에 나름대로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미래와 함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며 가족과 친구들의 의미 또한 생각해보는 아름다운 여정으로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책 『나』는 아이와 어른의 이야기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나와 내 주변 그리고 넓은 세계를 상상하고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조수경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영국 킹스턴대학교 일러스트레이션 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습니다. 잠꾸러기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고양이 옆에 누워 공상하기를 좋아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짓고, 신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림책 매력에 빠져있습니다. 창작 그림책으로 『내 꼬리』 『마음샘』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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