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사랑하기와 사랑받기 사이에서

by 행복한독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글·그림 / 이진경 옮김 / 128쪽 / 18,000원 / 상상의힘



다정했던 남편이 마흔에 가까워지면서 달라졌다.

전보다 말수가 적어지고 화를 자주 내기 시작했다. 혼자 있고 싶다며 방에 들어가 종일 나오지 않은 적도 있다. 만성 불안장애였다. 남편은 진단 이후로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끊임없이 자신을 흔들어놓던 ‘불안’과 직면하게 되었다. 아내도 그의 불안 증세를 품어줄 이해심과 원래보다 넓은 마음의 그릇이 필요했다. 가정을 지켜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남편 곁에 있는 ‘나’를 지켜야만 하니까.


평생 사랑받기를 요구했던 나였다.

책 속 구절, 머리로만 이해했던 사랑을 가정과 나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로 배워나갔다.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일, 마음의 온기를 나눠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해소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던 남편의 아픔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전문의 약물 처방과 상담 치료를 해온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해심’이라는 나무는 우리 가정이라는 정원 한가운데 깊은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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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건사해야 할 아름다움이 아주 많아.”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페이지마다 찬찬히 음미하고 난 뒤 순서와 상관없이 문장들을 자유롭게 곱씹어보며 깨달았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모두 한 사람의 내면에 사는 다양한 자아일 수 있음을. 저자는 고민하고 후회하며, 한없이 해맑다가도 섬뜩할 때도 있고,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책을 펼쳐 들 때마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읽곤 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인간다움’을 이룰 수 있다.

‘집이 항상 장소를 뜻하는 건 아니다’라는 동물 친구들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안식처는 힘들 때 생각나는 소중한 사람과 관계에서 만든 따뜻한 추억일 수도 있다. 책 속 친구들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온다.


“때때로 네게 들려오는 모든 말들이 미움에 가득 찬 말들이겠지만, 세상에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이 있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불안해하는 우리를 다정히 격려해 주기도 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뒤돌아봐.”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때도 있고 자기 내면으로 들어갈 때도 있다. 마음의 시선이 밖을 향하든 안을 향하든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여정인 건 확실하다. 무엇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어깨에 힘을 빼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가까운 존재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받기 전에 사랑을 주는 내가 되어보자. 바로 눈앞에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 마음의 온기마저 마스크로 차단되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조예은_대전 버찌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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