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잘’ 마주하기
행복한 장례식
맷 제임스 글·그림 / 김선희 옮김 / 48쪽 / 15,000원 / 책빛
어린 시절 큰집 할머니를 좋아했다. 이따금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한 토막씩 풀어놓았는데 일제강점기 시절과 직접 겪은 전쟁 이야기는 오금이 저릴 만큼 생생했다. 그런 이야기를 얼마나 맛깔나게 들려주시는지 나는 밤잠도 안 자고 할머니 옆에 꼭 붙어서 또 해달라며 귀찮게 조르곤 했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보따리를 안고 오실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언젠가부터 할머니가 오지 않았다. 돌아가셨단 소식을 뒤늦게 들었을 때 슬펐지만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가고 싶은지 내 뜻을 물어보지 않고 감추었던 부모님의 태도를 통해 ‘죽음은 나쁜 것이구나.’ 어렴풋이 인식했던, ‘죽음’에 관한 내 최초의 기억.
캐나다의 화가이자 작가, 음악가인 맷 제임스가 쓰고 그린 『행복한 장례식』은 아이의 눈으로 본 할아버지 장례식장의 풍경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아낸 그림책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 노마의 시선을 따라간다.
증조할아버지 장례식에 가야 하는 노마는 학교를 안 가니까 그저 좋다. 사촌 동생 레이와 하루 종일 놀 수 있다니 내심 기쁘기도 하다. 작은 교회에 모여 할아버지와 함께 나누었던 삶과 사랑을 조용히 추억하며 애도하는 어른들과, 사진을 보며 할아버지를 생각하다가도 장난을 치고 바깥에 있는 작은 묘지에 올라가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읽으며 둘레를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슬픔이 짙게 깔린 무거운 시간 속에서도 펄펄 살아 숨 쉬는 우리 삶의 시계는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 장례식장을 둘러싼 아이들 모습은 그대로 무척 자연스럽다. 실제 꽃, 골판지, 벽지, 액자 등 여러 재료를 더해 과감하고 신선하게 표현한 그림이 눈길을 끄는데 안타깝게도 작가는 이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삼촌의 죽음을 겪었다고 한다. 책 속에 콜라주기법으로 넣은 말린 꽃들은 바로 아버지의 장례식에 쓴 꽃이다. 독특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그림은 노마의 마음인 듯 마지막 길을 떠나는 할아버지의 바람인 듯 자유로우면서도 경쾌하고 따뜻하다.
엄마…. 할아버지는 오늘 행복했을 거야.
노마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책을 읽으며 나는 큰집 할머니를 떠올렸다. 30년도 지난, 이미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이 책을 읽는 동안 한꺼번에 밀려왔다. 노마처럼 나도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면, 작별할 기회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연에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보다 훨씬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인다. 많은 이들과 함께 슬픔을 공유하는 시간이 어린 내게도 분명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도 어른도, 죽음을 이해하는 만큼 삶을 더 깊이 살 수 있다.
박소영_서재도서관 책읽는 베짱이 관장, 『어서오세요 베짱이도서관입니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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