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깊이읽기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은 인공지능, 로봇, 바이오, 나노기술,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드론, 자율주행 차량, 3D프린팅 등 다양한 기술들이 융합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선포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매일같이 이 말을 듣는 것일까요?
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산업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일어난 획기적이고 총체적인 변화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규정짓는 키워드는 ‘연결화’와 ‘자동화’입니다. 기존의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융합하고 인간과 기계, 정보가 융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과거의 산업혁명이 사람의 손과 발을 대신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사람의 손과 발뿐만 아니라 두뇌를 대신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농업의 한계를 돌파하는 스마트 농장, 스마트 공장, 도시 전체를 재생시킬 수 있는 스마트 시티, 국토 전체를 고도화할 수 있는 스마트 공간, 질병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여는 스마트 헬스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예상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아주 오래 건강하게 살 것입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아마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살게 됩니다. 오래 살되 아주 건강하게 살 것입니다.
둘째, 인간은 신체적 노동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노동은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은 놀이와 문화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일에 많은 시간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셋째, 인간이 하게 되는 일의 성격이 크게 변화합니다. 창의성, 의사소통 능력, 컴퓨팅 사고가 필요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넷째, 인간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속에서 매우 혼란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것들의 본질적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다섯째, 미디어 생태계가 범세계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인간은 문학, 예술 행위들도 융합적이고 유희적인 형태로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들을 예상해볼 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과거의 인재들과는 좀 다릅니다. 자기 정체성을 지닌 사람,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닌 사람,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 그중에서도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 소통을 잘하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육은 이런 사람들을 키워내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자기를 알지 못하고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으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삶의 의미란 왜 살아야 하며,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지요.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지닌 인간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풍요롭고 메마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가상 세계는 결코 현실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 세계에 대한 이해는 자연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창의적인 사람이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쉽게, 다양하게, 많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생각을 잘하려면 주어진 정보를 그대로 머릿속에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추리, 추론, 비교, 분석, 판단, 예측, 상상, 종합을 통해 주어진 정보를 다른 정보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을 잘하려면 다양한 생각거리들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우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 알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같은 말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합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말들을 듣고,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우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말은 인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들과 식물들도 말을 합니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들은 동식물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인재인 정체성을 지닌 사람, 마음을 지닌 사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생각할 줄 아는 사람,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키워낼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방법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그림책을 즐겨 읽는 것입니다. 그림책은 인간의 마음을 가꾸는 아주 훌륭한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명작 그림책들은 그 속에 혼이 깃들어 있어서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족합니다. 심오한 세계를 지닌 그림책은 산업혁명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내기에 아주 좋은 매체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에 정말 그림책이 유용한 매체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려 합니다. 대부분의 그림책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대신해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대신하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귀를 기울이고 현실을 이해하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몰리 뱅이 지은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언니에게 치인 동생이 여러 가지 사건들로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 구릅니다. 그러다가 밖에 나가 큰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소피에게 집은 여전히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들 중 하나이지만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를 모두 가능하게 만듭니다. 저도 이 책을 보면서 화를 표출해버리는 성향을 많이 반성했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화를 잘 내는 나를 알게 만드는 일이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되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거칠고 메마르면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려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엄마가 언니의 편을 들어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소리 나지 않은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혼이 깃들어 있는 그림책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가꾸고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고 자연을 사랑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일본 작가 이토우 히로시의 『괜찮아 괜찮아요』도 바로 이런 힘을 지닌 그림책입니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자주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푸른 초목과 돌과 하늘과 개미와 온갖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그래서 아이는 점점 많은 것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산책길에는 언제나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뱀과 사나운 개와 아주 무서운 것들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줍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이런 것들을 감당할 수 없지만 할아버지가 계시기에 가능합니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나이 들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괜찮아, 괜찮아요”라고 말해줍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길에는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일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내 손을 잡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해주는 간단한 말 한마디가 우리들의 삶을 지탱해주지요. 할아버지와 함께 자연을 즐기며 여유 있는 산책을 하던 어린 꼬마는 다른 사람에게 “괜찮아, 괜찮아”라고 희망의 말을 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의 그림책을 한 권 더 소개합니다. 기시다 에리코가 글을 쓰고 나카타니 치요코가 그림을 그린 『새둥지를 이고 다니는 사자 임금님』입니다.
사자 임금님 지오지오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입니다. 지오가 나타나면 모두들 슬금슬금 피해버립니다. 지오는 매우 쓸쓸하고 사는 것이 지루합니다. 그때 하얀 새가 나타나 자기도 사는 게 재미없다고 자신의 고충을 말합니다. 알을 까놓으면 표범이나 뱀들이 알을 다 삼켜버린다는 것이지요. 사자 임금님 지오지오는 자기 왕관에 알을 까라고 제안합니다. 이야기 끝에는 나이 들어 눈먼 사자가 되었을 때 어린 새들이 지저귀며 지오지오의 주변을 맴돕니다. 사자는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인간 아닌 기계와 더불어 혼자 살아가기 쉬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혼자서 이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는 그림책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아이와 어른이 함께 그림책을 열심히 읽는 건 어떨지요?
이차숙_가천대 유아교육학과 교수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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