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산책 1 - 평택 아르카북스
아르카북스를 시작하기 전 입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로 살아왔다. 학생들의 희망도 보았지만 또 많은 좌절도 보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재생산되는 희망과 좌절을 더 이상 보기가 싫었다. 언제부터인가 자본주의 교육으로 인한 최상위권 사다리가 사라진 것을 느꼈는데도, 그들은 무엇에 홀린 듯 멈추지 않고 신기루를 찾아 방황했다. 그러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책 모임’에 참여했다.
사실은 아이들에게 읽어줄 동화책과 그림책을 선별하기 위해 만난 모임이었으나 모임을 하고, 동화책을 읽으면서 어른인 우리들의 유년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동화책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결핍과 소외된 아이들인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한국의 고도 성장기를 유년으로 보내 부모와의 소통이나 절절한 사랑이 부족했던 현재 어른들의 유년에 그 지점이 맞닿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른들이야말로 유년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치유되고 회복되었을 때, 내 아이를 나와 같은 소모적인 경쟁 교육에 내몰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우리는 그림책 공연과 그림자 공연 같은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모임이 지속되면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지속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교직에 있을 때에 신뢰성을 잃은 공교육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학교 프로그램, 발도르프 또는 노작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간단하지만 그림책이야말로 지난한 학교교육에 지친 아이들뿐 아니라 힘든 유년을 겪고도 도시의 경쟁에 내몰린 어른들에게 내면의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아르카북스의 ‘아르카(ARCA)’라는 이태리어 ‘방주’라는 뜻의 이름도 이때 결정하게 되었고, ‘피난처’라는 뜻을 가진 ‘방주’에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길 바라게 되었다. 아르카북스 북스테이는 이런 취지에서 하나의 가정 안에서 서로 들여다보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단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했다. 아빠는 직장에 엄마 또한 직장 또는 육아와 가사에, 아이들은 경쟁 위주의 학사 일정에 지쳐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현대사회에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세대 간의 대화와 위로라고 생각했고, 그 좋은 매개체가 쉽게 읽을 수 있으나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동화책과 그림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르카북스의 북스테이는 오로지 책만을 읽고 고리타분한 감성에 젖어 독서를 강요하는 공간은 아니다. 북스테이 한쪽에 수영장을 두어 여가를 즐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하였고, 오후 6시가 되면 아르카북스 서점동을 통째로 이용해 넒은 서재와 다락방을 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르카북스 서점동에는 책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계단식 서재와 숨은 공간인 다락방을 두어 책을 좀더 즐기며 읽고 독서 자체가 편안한 습관이 되도록 설계했다. 독후활동이나 독후감을 써야 하는 독서에서 벗어나, 충분히 휴식과 놀이를 한 후 ‘한번 책 좀 읽어볼까’라는 주체적 의지가 한 번이라도 발현되는 공간이길 바랐다. 그 단 한 번의 경험은 아이에게 평생 책이 친구가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믿었다.
아르카북스는 사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한국 사회의 틀에 박힌 입시 경쟁의 구조에서 벗어나 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나아가 교조적인 사회구조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주체적인 자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서점이자 교육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 첫 출발로 가정 내에서 대화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시작은 큰 책임감과 희생만을 강요받고 본인의 숨겨진 영혼을 잃어버린 가정의 가장과 엄마, 그렇게 억압되고 있는 현대 어른들의 치유라고 생각했다. 보수적인 한국 현대 가정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을 회복한 ‘천진난만’(하늘에서 타고난 그대로 핀 꽃)한 아빠와 엄마가 재탄생될 때, 그 천진난만함으로 진정한 치유와 회복의 자유가 실현될 때, 철저히 기득권에 의해 유지되고 보수되는 현대 한국 사회의 계급적 재생산이 중단될 것이라고 믿는다.
•평택시 현덕면 덕목5길 122-11
•010-3140-8659
방정민_평택 아르카북스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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