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가진 것 없는 우리가 여럿이 되어 함께
사람을 옹호하라
류은숙 지음 / 320쪽 / 17,000원 / 코난북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머릿속을 부유하던 오래된 먼지들이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흡입되는 것을 느꼈다. 표지의 말처럼 “인권의 최전선이자 최후의 보루인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착실히 소개하는 이 책은 인권·존엄·자유·평등·책임 등 12개의 키워드를 부표처럼 띄우고 그것을 꽉 잡아 안아보게 한다. 그래서 인권이라는 크고 둥근 배에 함께 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마주보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다 읽고 나면 책 제목이 ‘인권을 옹호하라’가 아닌 ‘사람을 옹호하라’인 줄도 조금 알게 된다. “인간의 존엄은 취약함 속에 깃들어 있다”는 한 문장에 이어 열 문장을 더 말할 수 있게 된다. 높고 단단해 보이는 ‘인권’을 잘게 나누어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들려준다.
나는 성매매업소가 모여있는 전주 선미촌에서 동료 예술인들과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물이 모두 빠져나간 바다처럼 텅 비어 한산하고, 해가 떨어질 때쯤이면 곳곳에 붉은 등이 켜지며 검은 차가 돌아다니는 이곳은 매일 썰물과 밀물이 말할 수 없는 격차를 일으킨다. 책방은 마치 방파제처럼 이곳에 묵직하게 서있다. 물에 젖기도 하고, 바람에 마르기도 하고, 갑자기 새똥에 맞기도 하고, 느닷없는 돌에 맞기도 하며 이곳에 서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광경을 맞닥뜨리는 우리는 생각한다. 이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곳에 있는 동안 더 정확하게 살피고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선미촌에서 우리는 사람의 얼굴과 사람의 목소리와 사람의 환대와 사람의 온기를 찾아 나선다. 그것이 남기는 여운을 찾아 헐레벌떡 뛰어간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사랑할 수 없는 것보다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
살아내다 보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마음 한구석이 부서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끝없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느낄 때도, 그것이 부서지면 이상한 곳으로 질주할 것 같아 마음을 다 내놓을 때도 있다. 세상이 너무 커다란 구멍 속으로 사라져 뒤쫓아 통과하고 싶지 않을 때,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 책장을 넘길 때, 그래서 매일 책상 앞에 당겨 앉을 때가 있다.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각자도생, 자조의 말에 공감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선미촌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데는 ‘그래도’로 바뀌고, 그래도는 ‘그럼에도’로 각도를 바꿔오며 작은 것들 속에 달린 희망을 보려 하는 나와 우리를.
저자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끄집어낸 아주 뾰족한 도구로, 독자의 머릿속을 덮고 있는 먼지들을 탈탈 털어낸다. 독자들은 해묵은 먼지들을 흡입하는 이 작고 촘촘한 책을 한 권씩 집에 들여 수시로 머릿속을 청소해야 한다. 밖으로 나가 동네책방에 들러 이 ‘청소기’를 주문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해야 한다. 그리하여 달리 가진 것 없는 우리가 여럿이 되어 함께 책임지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기억해야 한다.
임주아_시인, 책방 ‘물결서사’ 공동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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