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산동

내가 살던 그리운 우리 동네

by 행복한독서
우리 동네 공장은 오늘도 바쁘게 돌아갑니다. 공장에는 엄마 아빠도 있고 우리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인형을 들고 골목에서 뛰어놀지요. 딴 동네 사는 선생님은 공장이 있어 살기 나쁘다고 하지만 나는 우리 동네가 참 좋습니다.



나의 독산동

유은실 글 / 오승민 그림 / 48쪽 / 15,000원 / 문학과지성사




나는 이야기를 그리는 일을 합니다. 이야기를 잘 그리려면 글로 쓰여 있지 않은 부분을 상상해야 합니다. 그것은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과 비슷합니다. 빈 공간에 꼭 맞는 조각을 찾으려면 자료 조사를 하고, 책도 읽고,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또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뒤져보기도 합니다.


영암에서 태어나 성남으로 이주해서 여섯 살부터 삼십대 초반까지 살았습니다. 개천에 떠내려오는 살림살이와 달동네 천막을 보고 살았지만 어린 나는 그것이 비참한 풍경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이차선 도로를 건너야 했는데 그런 불편을 빼면 괜찮았습니다. 1980년대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나쁜 동네’에 살았던 은이 이야기를 그리게 됐습니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유은실 글작가와 만났습니다.

『나의 독산동』은 유은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작가는 내게 옛날에 살았던 동네 지도를 주었습니다. 은이가 살던 동네를 가려면 우시장을 지나가게 되는데 유은실 작가의 작품 『변두리』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변두리』의 주인공 수원이가 선지를 쏟았던 우시장 건널목을 지납니다. 비탈길이 시작되는데 전깃줄 사이로 비행기가 날아갑니다. 손을 뻗으면 비행기의 매끈한 배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릉을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면 길을 따라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가게들, 나이 많은 공장들이 은이가 살던 곳으로 이어집니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벽돌집, 담벼락 위, 비좁은 골목, 크고 작은 공장 한편에는 언제나 화분이 놓여있습니다. 흙과 물만 있으면 씩씩하게 자라는 푸른 잎은 지친 노동자들에게 위안을 주었을 겁니다. 도시로 돈을 벌러 온 셋방살이 가족은 고향에서 가져온 씨를 깡통 화분에 심고 꽃이 피길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이 사라지고 변했을 테지만 볼 것 많은 그 동네가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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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산동』의 본문은 펼침 스무 장면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죠. 만약 그림책이 50장면 100장면이라면… 상상만 해도 괴롭습니다. 나는 먼저 주인공과 부주인공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독산동에 나오는 인물은 실제 비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은이는 속이 깊고 말수가 적은 아이라 눈을 강조해서 그렸습니다. 큰 눈을 통해 은이의 감정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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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산동』은 아이의 일기처럼 짧고 건조한 문장으로 쓰여있습니다. 공간 묘사가 없고 주인공의 감정도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나는 주인공이 가는 길을 따라 글 밖에 있는 공간을 채워나갑니다. 전체 장면이 그려지면 편집자와 글작가로부터 의견을 받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채색 시안을 만드는데 나는 이때 작가들이 말하는 마감 스트레스를 겪곤 합니다. 대청소, 낮잠, 폭식, 정리, 딴짓 등으로 잊으려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림체나 채색 기법을 책마다 다른 분위기로 바꾸려다 보니 고민이 많습니다. 크레파스, 파스텔, 펜, 잉크. 뻔한 재료지만 순서와 가감에 따라 그림 맛이 변합니다. 비싼 물감과 종이를 낭비하고 나서 ‘아! 난 정말 재능이 없나 봐!’ 이런 탄식을 하게 될 때쯤 실마리를 잡게 됩니다. 이런 에너지 소모가 많은 방식으로 그림을 완성하기 때문인지 내 손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똑같이 재현하려면 애를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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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산동』은 거칠고 부서지는 질감과 색의 대비가 강한 채색 방식을 썼습니다. 세부 묘사보다 정서적 표현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이 비치는 창문과 그로부터 새어나오는 불빛이 하늘로 별로 확장되는 장면들은 송곳과 펜 끝으로 물감을 벗겨내고 새겨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나는 이 장면들을 그리운 마음으로 그렸습니다. 내가 살던 곳, 어린 내가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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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달간 은이를 따라 여행을 했습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을 찾기도 했고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11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참 보고 싶었습니다. 재주 많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구부려 어린 자식을 키워냈는데 따져보니 지금의 나보다 어렸습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처럼 땀 흘려 일해 자식들의 따뜻한 울타리가 되었던 사람들 모두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오승민 작가는 앞산을 오르면 북한이 보이는 파주에 삽니다. 몇십 년 전에는 총알이 날아왔던 무서운 동네였지만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바다로 흘러가는 멋진 곳입니다. 평화가 오면 정말 좋은 동네가 될 것 같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꼭꼭 숨어라』 『앨리스의 이상한 헤어살롱』이 있고, 『새끼 표범』 『찬다 삼촌』 『우주 호텔』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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