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 14 - 오세나
한 사람의 작가는 그저 우연처럼 오는 게 아니다. 수없이 많은 굴곡의 개인사가 얽혀 하나씩 알토란처럼 작품이 나온다. 그림책 밖에 있을 때 그는 여러 차례 순수미술 작가로 개인전과 초대전 등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었다. 그토록 힘들게 작업한 작품들을 대중들 앞에 내놓았는데 그림을 보러 오는 관객은 많지 않았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여주고 다시 또 작업실로 돌아가 작품에 몰두하고 다음 전시를 준비한다. 그런데 허탈했다. 아주 많은 사람을 기대하진 않았더라도 일부 소수의 사람에게 보이자고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결혼과 함께 생활의 변화가 있게 되면서 전주에서 서울 어느 주택가 빌라로 옮겨 오게 되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해야 하는 작가에게 작업실이 없어진 것이었다.
더구나 아이 키우는 일까지 겹쳐서 한동안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에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다가 이 그림책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일주일에 하루는 어린이집에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맡기고 그림책을 깊이 있게 공부하러 다녔다. 이때부터 구상하고 3년 정도 묵혔다가 만들어낸 것이 『로봇친구』였다. 한때는 어느 집에서 매우 소중한 물건이었을 텔레비전이 길가 전봇대 아래 버려진 채로 있고, 어느 가게 앞에서 로봇을 갖고 싶어 하는 소년이 함께 만들어가는 버려진 고물과 소년의 만남. 로봇 탄생 이야기.
우연히 건축물들의 조형성에 매료되어 들른 파주출판도시에서 이 작품의 탄생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러나 시간도 그렇지만 그만큼 무르익는 데는 그럴만한 준비 과정이 있었다.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만 다섯 차례 전학을 다녔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도 기억나는 지리산에서의 어린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주로 오면서 비로소 부모님이 집을 지어 들어갔는데 그 집은 동네에서도 꽃집으로 알려졌다. 아주 큰 화분에 여러 나무를 밖에서도 잘 보이게 키우셔서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게 공을 들이신 거였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집에는 형제 사 남매가 한 명씩 번갈아 할머니와 지내도록 했다. 이런 생활로 자연 속에 익숙하게 젖어 들었고 할머니와 지내면서 사람이 쓰는 물건들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착이 갔다. 어렸을 때의 정서는 그대로 작가 생활에 환경을 주제로 한 업사이클링 작업에까지 이어졌다.
이런 성장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그는 도시 생활에서 점점 망가져가는 자연에 상심도 컸다. 잦은 전학으로 적응이 쉽지 않았던 외로웠던 시기였지만 그에게는 우연히도 글쓰기가 다가왔다. 5학년 때 글짓기 대회에서 은상을 받으면서 글쓰기가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국어 선생님께 일 년간 편지를 쓰는 때가 있었다. 이때 편지를 더 잘 쓰기 위해 한편으로는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 책을 더 많이 봐야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선생님에게 세 통의 답장을 받았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학교 미술실에서 주로 그리며 특별한 지도 없이 혼자 습득해 나갔는데 어느 날 화실 다니는 친구가 그리는 것을 보면서 곁눈으로 수채화에 명암 넣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5개월가량 화실을 다닌 것 외에는 거의 혼자 그림을 그렸다.
최근 그의 작업에 가장 큰 자극이 있었던 크리스 조던의 ‘아름다움 너머’ 전시는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 부산 F1963에서 열렸던 이 전시에서 10초마다 소비되는 24만 개의 비닐봉지를 이용해 「비너스의 탄생」을 예술 작품으로 재창조한 작가의 작업과 이 작가의 대표작인 죽은 알바트로스의 사진들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
이후 나온 작업이 『검정 토끼』다. 표지에서 얼핏 그냥 이미지만 보면 실제로 토끼로 느낄 만큼 흡사하다. 그런데 커버를 좌우로 벗겨내면 두꺼운 합지 커버를 한 누드 제본의 알맹이 책이 나온다. 합지 제본의 본격 표지에서 색채가 화려한 각양각색의 수없는 형체들이 나타나고 그 뒤부터 실제 검은 토끼가 하나, 둘, 아주 여러 마리가 모이더니 큰 무리가 되어 철망이 있는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하면서 이들은 꽃씨처럼 흩날린다. 맨 마지막 그림과 함께 짤막한 글은 이렇게 마감한다.
“오백 년 오색찬란하게 천 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 신비로운 색으로 살아가요.”
꽃씨가 되어 높이 올라 바다에 가라앉은 수많은 ‘예쁜 씨앗’들은 내가 버린 쓰레기들이다.
티슈 통에 삐죽 올라있는 휴지에서 얼핏 스치는 이미지가 빙산으로 오버랩되어, 실제 글 없는 그림책 『빙산』의 작품으로 태어나듯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선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파고들어 가는 이런 방식은 『지우개』에서도 드러난다. 이 물건이 지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쓰거나 그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우기도 채우기도 한다는 것을 작가는 글 없는 그림책으로 표현한다.
바로 알고 짐작하며 얻어내는 그림책들도 있고 이 작품처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보고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책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작가에게서 계속 나오는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 아니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작가의 인문학적 생태 공간이 있다. 마치 일생의 화두처럼 주로 그림으로 말을 걸고 보는 이가 이 속에서 함께 거닐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그렇게 작가는 할 말이 무척 많다.
정병규_행복한그림책연구소 소장,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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