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by 행복한독서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신운선 글 / 장선환 그림 / 192쪽 / 11,500원 / 해와나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외출과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주말에는 자연 속에서 가족과 오붓하게 보내는 캠핑을 시작했다. 캠핑 초보인 남편과 땀 흘리며 텐트를 치고, 짐을 하나하나 풀어놓고, 밥을 지어 먹고, 모닥불을 피운다. 일상을 옮겨놓은 일들이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면 휴식이고 즐거움이다. 그 시간 덕분에 꽃과 나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나와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바람을 느끼는 아이, 은수가 있다. 은수는 엄마가 떠나고, 혼자 자면서 밤에 부는 바람을 알게 된다. 은수의 마음은 바람 속에서 마구 움직인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빠와 단둘이 사는 은수는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다. 교실에는 은수를 닮은 아이들이 있다. 적극적이지 않고, 사교적이지 않은 아이들은 짐작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 세계에 담긴 간절한 바람은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좋아하는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는 것, 진짜 진짜 잘하는 재주가 하나, 아니 두 개 정도 생기는 것, 엄마가 빨리 꿈을 이루는 것, 아빠가 돈 많이 벌어 바퀴벌레 안 나오는 집으로 이사 가는 것….”


이런 바람을 품은 은수는 봉사활동으로 청춘 복지관의 한글학교 보조 선생님이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께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조용해 보이는 은수가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그림책을 읽어나갈 상상을 하면 내 손에 땀이 난다. 은수는 그림책 속 혼자 있는 꼬마가 심심해 보여서 놀아주고 싶고, 사이가 좋은 오소리 부부의 뒷모습에서 이혼한 엄마 아빠가 떠올라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은수가 그림책을 읽고 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여기저기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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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잃지 않는 그래서 어린이의 모습을 닮은 어르신들의 삶은 그림책을 통해 은수에게 가닿는다. 그중 어떤 문장은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의 문장처럼 내게로 온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더 소중하니 그런 걸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겠죠.” “난 인생이 안 보여. 이만큼이나 살았는데도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은수에게 닿은 어르신들의 말은 봉사 보고서에 은수의 말로 옮겨진다. “오늘 배운 것은 인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것이다. 나는 봉사 시간에 사용할 별칭을 ‘바람’으로 정했다. 생각해보니 밤에 혼자가 아니다. 바람과 함께다. ‘바람’은 소중한 뜻이 많이 담긴 단어다.” 은수는 숨겨놓은 마음과 꺼내기 어려운 집안 사정을 한 면에 다 쓰고도 모자라서 뒷면까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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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순간,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글쓰기는 내게도 큰 힘이 되었다. 부서져 흩어질 것 같던 마음은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동안 단단해져 있었다. 글을 쓰면서 은수가 쓴 보고서가 담긴 가방처럼 삶이 묵직하고 중요한 무엇으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사람은 어차피 혼자 사는 거야”라는 은수 엄마의 말이 참이 되려면, 은수는 끝까지 밤바람 속에 혼자 씨름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에서 은수는 햇빛과 바람이 좋은 날, 아빠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그런 은수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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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저자의 말처럼 조금 어설프고 더디더라도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은수를 따라 밤바람 속에 혼자 서있기도 하고, 꽃과 나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속에 서있기도 했다. 바람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이 책에는 작고 약한 존재인 은수가, 그리고 과거의 어린이였던 우리가 성장하며 통과해온 한 시절을 담고 있다. 책을 덮고 내 손에 들린 건 그 시절 간절했던 바람에 대한 흔적과 그 시절 곁에 있어 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오늘 삶이 멋지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이세나_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교육원 연구사, 『나는 아침독서하는 선생님입니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1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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