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에 마주한 자연의 빛
옛날에 엄마와 이모가 너희만 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랑 반딧불이를 보러 간 적이 있어. 너희한테 이 풍경을 꼭 보여 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우리를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달빛 조각
윤강미 글·그림 / 40쪽 / 13,000원 / 창비
십여 년 전 우리 가족은 집 주변 숲으로 산책을 자주 나갔습니다. 어느 깜깜한 여름 그믐밤 자주 가던 그 숲에서 휙 지나가는 하나의 작은 불빛을 발견하는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반짝이는 섬광에 대한 감동으로 반딧불과 관련된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윤동주의 시 「반딧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이라는 시어가 씨앗이 되어 제 이야기로 발아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빛 조각』은 달이 사라진 그믐밤에 숲으로 간 어느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해 질 무렵, 전자기기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엄마를 따라 숲으로 갑니다. 앞서가는 엄마와 이모를 따르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온 숲속에서 아이들은 전자기기를 내려놓고 가족의 손을 잡습니다. 아이들은 개구리 소리, 달빛이 사라진 밤하늘의 별빛, 부엉이의 비행, 바람결에 실려 오는 달맞이꽃 향기, 풀벌레와 나방들의 날갯짓 등을 느끼게 됩니다.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밤 숲의 품에 서서히 동화됩니다.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 가족은 조각조각 내려와 숲속을 밝히는 ‘달빛 조각’을 만납니다. 가족이 마주한 그믐밤의 자연은 한낮의 화려함이 아닌 오감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입니다. 아이들이 그런 자연의 품에서 한 걸음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달빛 조각』 기획의 아이디어가 발생했던 그 숲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무가 자라는 빌딩』을 만들었습니다. 『달빛 조각』은 오랜 시간 여러 번의 수정을 반복하다가 묵혀두었습니다. 2년 전 출간 계약을 하면서 현장 답사를 새롭게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의 장면에는 가족이 함께 걸어가는 상황이지만 실제 기획을 발전시키기 위해 답사를 할 때는 혼자 많이 다녔습니다. 현장의 식생을 알아보기 위해 낮과 밤을 다 체험했습니다. 한낮에 인적 없는 반딧불이 서식지로 들어간 저를 본 동물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런 체험이 반딧불이가 가득한 장소에 도착한 가족의 모습에 반영되었습니다. 동물들과 반딧불이는 더 섬세하게 과장하고 사람은 검은색 실루엣으로 처리했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밤 숲길에서 반딧불을 발견했던 그 즈음에 제 여동생의 남편과 제 남편의 형님이 건강의 문제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백석 시인은 「정주성」이라는 시에서 반딧불을 파란 혼이라 칭하였던데, 저는 백석 시인처럼 그런 영혼까지는 보지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 발견한 그 작은 빛이 극심한 우울함을 겪던 우리 가족에게 약간의 희망적인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제 여동생과 동서의 삶이 책 속 가족 구성원 설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족이 다 함께 서로를 껴안고 있는 장면에서 언니가 여동생의 팔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책 속의 엄마가 저 자신이자 곧 가장으로서의 여동생이기도 합니다. 시련을 극복한 여동생에 대한 애틋한 제 마음이 투영된 것입니다. 이 책이 모든 가족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달빛 조각』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시적인 함축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현대의 자연에서 사라져가는 작은 반딧불이의 불빛, 즉 이 미광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보름달이 되고 그 달이 멀리 이어져 온 우주로 연결되는 그런 감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 작은 섬광의 아름다움이 지속가능한 우리의 자연환경이 되어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소망합니다. 미래의 다음 세대에까지 그 자연의 보편적 요소를 누릴 수 있도록 잘 살려내어 보존하고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런 제 의도가 독자들에게 가닿기를 바랍니다.
윤강미 작가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습니다. 2018년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의 「1회 언-프린티드 아이디어」 전시에서 관람객 투표를 통해 출판 지원 작가로 선정되었고, 2020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나무가 자라는 빌딩』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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