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Feb 22. 2022

무슨 일이지?

아기 거북의 안녕을 바라며

무슨 일이지?

차은실 글·그림 / 48쪽 / 14,000원 / 향



그림책 향유자로서 기쁜 마음으로 향 출판사의 첫 책을 만났습니다. 우아한 청회색 표지가 썩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곰, 돼지, 말, 코뿔소, 사자, 양, 토끼, 스컹크, 타조, 기린…. 

줄지은 동물들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기다란 줄에는 무조건 자리를 잡는 것이 삶의 지혜. 긴 줄 끝에는 공짜 선물이 있거나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을지도 모르니 저도 서둘러 그 대열에 섰습니다. 무슨 일인지 귀를 쫑긋해보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시끌시끌 동물들이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 긴 줄도 지루하지 않네요. 

“빨리 가자!” “여기가 맞지?” “뭐가 좀 보여?” “엉덩이만 보여.” “혹시 사자가 죽었니?” “나 살아 있어!” “다리 밟지 말아 줘!” “뿡!” “읍, 이게 무슨 냄새야?” “앞에 불 난 거 맞지?” 


무슨 일인지 도대체 오리무중이던 그때 올빼미가 외쳤습니다. 

“어, 누군가가 빠졌어요!” 

그 순간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잡아당겼습니다. 있는 힘껏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누가 빠졌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든 구해야 한다는 마음만은 한결같아요. 

누가 빠진 걸까요? 


알에서 갓 깨어난 아기 거북 한 마리가 모래 구덩이에 빠져 낑낑대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저마다 돕겠다고 나섰지만 아기 거북은 야무지게 말합니다. 

“혼자 할 수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실패가 거듭됩니다. 

엉금엉금 벌러덩, 엉금엉금 벌러덩, 벌러덩…. 

그냥 답삭 안아 올리고 싶었습니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둔 순간, 눈을 꼬옥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발 이번엔.’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니 아! 드디어 구덩이를 헤쳐 나온 아기 거북이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네요. 간절한 마음으로 뜨겁게 응원하던 동물들이 대견해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잘 지내!” 


어쩐 일인지 동물들 대열에 함께 있었지만 저는 동물들이 건네는 인사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잘 지내”라는 말이 아직 목에 걸려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데 “잘 지내”라는 말에 어떤 마음을 담아 어떤 톤으로 읽어주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물들의 바람처럼 아기 거북은 너르고 푸른 바다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에서 ‘바다로 간 거북’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방류 십 일일 만에 플라스틱 잔뜩 먹고 죽어 돌아온 거북이, 목에는 비닐봉지 코에는 플라스틱 빨대…. 아기 거북이 고군분투하며 돌아가려 했던 바다의 모습이 이렇다니. 


그제야 목에 걸렸던 말이 다른 언어로 튀어나옵니다. 

아기 거북, 미안해! 미안해! 꼭 다시 만나!” 

아기 거북에게 건네는 아이들의 인사도 들어봐야겠습니다. 함께 영상도 보고 책도 읽으며 저마다의 언어와 저마다의 목소리로. 


제님_『그림책 탱고』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