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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Feb 23. 2022

곰과 새

검은 연필 자국처럼 선명히 묻어나는 여운

곰과 새

김용대 글·그림 / 56쪽 / 13,000원 / 길벗어린이



『곰과 새』는 유난히 표지의 여백에 마음이 오래도록 머무는 책이었습니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곰과 새장에서도 있는 힘껏 몸을 뒤로 빼고 있는 노란 새 한 마리. 면지 속의 곰이 멀리서 쿵쿵 다가옵니다. 글 없는 그림책을 읽을 때는 심호흡을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있는 힘껏 집중하지 않으면 그림이 품고 있을 겹겹의 이야기를 혹시 놓칠까 봐요. 


첫 장면을 펼치자마자 비탈의 높이감이 느껴지는 연출에 감탄합니다. 곰은 둔덕에서 빈집 한 채를 발견합니다. 그다음 장면에서 어느새 곰은 창가로 다가와 있습니다. 눈을 보여주지 않고 실루엣만 드러나니 긴장감이 더해집니다. 배가 고팠던 곰이 허겁지겁 꿀단지를 깨트려 꿀을 핥아먹고 한숨을 돌리는데, 집 어딘가에서 아름답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새장에 갇힌 샛노랗고 작은 새 한 마리. 거칠게 새장을 낚아챈 곰의 행동에 독자도, 자그마한 새도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작가는 새의 노란색을 제외하고는 채도가 있는 그 어떤 색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연필 스케치로 희붐하고 아득하게 표현하고, 텍스트는 없어 독자는 자꾸만 애가 탑니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스케치를 천천히 감상하고 싶은 욕망과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은 욕망이 충돌하지요. 즐거운 고민입니다. 


새장을 입에 물고 끝 간 데 없이 자꾸만 숲으로 들어가는 곰의 속내를 알 수 없습니다. 새를 탐내는 여러 동물들을 사정없이 쳐내고 곰은 마침내 자신이 꼭 하려던 걸 합니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알아챘을 결말이지만, 알고 있었음에도 먹먹하게 밀려오는 감정은 어쩌지 못합니다. 



자유를 갈구해본 존재만이 타자가 속박된 것에 함께 아파할 줄 압니다. 다른 이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는 건 생존 그 이상의 숭고함이지요. 우리는 작은 새가 날개를 마음껏 공기에 내맡기는 그 순간을 보기 위해 웅크리듯 이 작품을 음미했는지도 모릅니다. 색을 절제하다 끝내 한 번 폭발시키는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하고, 다시 한번 더 펼치게 되는 책. 그림을 한 번 쓰다듬으면 연필이 손끝에 묻어날 것만 같습니다.


김여진_서울 당서초 교사, 『재잘재잘 그림책 읽는 시간』 공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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