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깊이읽기
첫 번역 그림책인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와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가 1996년에 출간되었으니 우연히 시작하게 된 그림책 번역 일을 하게 된 지 어언 이십 년이 넘었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번역을 시작한지라 최근까지도 내가 번역자라는 자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작년 고양시 도서관에서 그림책 특집 강좌를 진행할 때 번역가로 초대를 받았다. 사회자인 김중석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 내가 요즘 번역을 많이 하고 있구나!’라고 상황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그림책을 많이 번역하기는 한 것 같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번역했나 잠시 살펴보니, 작년 한 해 동안 스무 권이 넘는다.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나온 번역 그림책은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오백 권이 넘을 것 같다. ‘어쩌다 들어선 길에서 이렇게 활발하게 일할 수 있다니, 나는 참 운이 좋구나!’라고 잠시 생각했다.
처음 번역한 그림책을 지금 다시 보면 조금 민망한 생각이 든다.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경험이 부족한지라 너무 원문에 얽매여 번역했다. 외국어 시간에 착실하게 공부한 학생이 해석한 것 같은 번역이다. 물론 지금도 지나친 의역을 선호하지 않는다. 의역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인데, 지나칠 경우 독자가 작가의 목소리보다 번역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번역자는 작가와 작품을 독자에게 소개해야지 번역자 자신이 너무 부각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다시 출간된 ‘꼬마 곰’ 시리즈는 번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작업한 책이다. 출판권이 다른 출판사로 넘어가서 20년 만에 번역한 글을 다시 손보게 되었다. 담당 편집자가 “선생님, 꼬마 곰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였는데 이 책의 편집자가 되어 기뻐요”라고 말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작가와 화가가 멋진 작품을 만든 덕분에 두 사람이 20년 만에 또 다른 역할로 만난다는 게 신기하기도 기쁘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내심 고칠 게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꼼꼼하게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보면 볼수록 고치고 싶은 부분이 여러 군데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안에 내 영어 실력이 늘었을 리 없다. 좀더 그 책을 잘 이해하게 되었고, 작중인물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결국 여러 군데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그림책을 번역할 때 실제 번역에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을 한다. 우선 그림책을 여러 번 읽어서 어떤 내용인지 전체적으로 이해한다. 그런 다음에 화법을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그림책은 혼자 읽기도 하지만 주로 어린이에게 읽어주는 책이다. 그런데 우리말은 화법을 달리하면 아주 다른 느낌이 된다. 『평화 책』 같은 경우, 여러 번 읽은 다음에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식으로 옮겼다. 그런 화법으로 옮겨야 이 책에서 표현된 작가의 의도를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일까, 이 책은 어느 신문에서 좋은 번역 그림책으로 뽑힌 적도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여러 권 출간되었다면, 번역하기 전에 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본다. 그러면 작품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 한결 수월하게 번역할 수 있다. 『낮에도, 밤에도 안녕』 『느끼는 대로』 『그리는 대로』 『너, 무섭니?』 『작은 꼬마 원숭이의 아주 큰 모험』 『올리비아는 스파이』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 같은 작품이 이런 경우다. 이미 출간된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그 작가의 특성이라든가 작품 세계를 살펴본다. 그러면 내가 번역할 책 한 권에 얽매이지 않고 훨씬 자유롭게 번역할 수 있다.
인물 이야기 그림책이라면, 그 인물과 연관된 책을 찾아 읽어보기도 한다.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이 그런 경우다. 마리아 메리안의 전기를 읽으니, 그는 주로 식물을 그리는 화가였다. 하지만 그는 특정 식물을 먹으며 살아가는 특정한 곤충을 그려냄으로써 곤충에 관한 새로운 발견을 한 인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식물 화가이자 곤충 화가였던 것이다. 또 독일의 이전 화폐였던 마르크화에 초상이 들어간 대표적인 여성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신사임당이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화폐에 초상이 들어간 것처럼. 어린 메리안을 화자로 한 그림책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대해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알고 나니 마리안의 전체상을 염두에 두고 번역할 수 있었다.
『로자 파크스의 버스』 『꼬마 바흐』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흑인 인권 운동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로자 파크스에 대해 잠깐이나마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바흐는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연습하고 공부하는 음악가라는 사실도, 또 바흐의 시대에는 여성들이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워밍업을 통해 나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이것저것 알게 되었다. 번역 작업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뭔가 새롭게 알게 되어 즐거웠다.
정보 그림책의 경우에는 번역하기 전 관련 지식이 담긴 책들을 읽어 배경지식을 최대한 갖추고자 했다. 반대로, 번역하다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보 그림책은 쉽고 재미있게 다양한 정보를 담는지라 어른인 나에게도 새로울 때가 적지 않았다. 『소피 스코트 남극에 가다』 『빨간 자전거』 『비닐봉지 하나가』 『공룡 할머니가 들려주는 진화 이야기』 『원숭이가 없으면 초콜릿도 없다?』 『세계 도시 지도책』이 그런 경우다. 과학이나 사회 정보를 담은 책들인데 어른인 내가 읽어도 흥미진진했다.
『세계 도시 지도책』은 번역하면서 이 도시에 가봤으면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전부 서른 개 도시가 나오는데 난 아직 절반도 가보지 못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 즐거움은 더욱 크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에 있는 ‘붉은 광장’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붉다’가 공산주의와 연관된 말이라고 여겼으나 사실 러시아 말로 ‘붉다’는 ‘아름답다’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인데 그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림책은 글이 적기 때문에 나처럼 체력이 부실하고 끈기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비교적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분야다. 그렇지만 글이 아주 적을 경우에 겪는 어려움도 있다. 특히 시라든가 시적인 의미를 담은 글의 경우, 여러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글을 쓸 때 같은 단어여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번역은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번역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끔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 번역본을 참조하기도 한다. 물론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별 도움이 안 될 때도 있다.
원서가 영어인 『포에버 영』은 번역을 맡고 난 후 일본에 갈 일이 생겼다. 때마침 작가인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난 다음이라 책방에 밥 딜런 책이 잔뜩 쌓여있었다. 일본에서는 『포에버 영』이 벌써 몇 년 전에 번역되어 있었다. 살펴보니 내용이 완전히 달랐다. 번역자가 시인이라서 그랬을까. 기독교적인 사고가 희박한 일본에서는 하느님의 축복을 기리는 내용이 적당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제목조차 달랐다. 그래서 참조는 했지만 번역 작업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번역은 선택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경우였다. 원서가 독일어인 『더벅머리 페터』도 영어본을 참조한 적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내용이 너무 달라서 막상 번역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원서가 독일어인 『너, 무섭니?』의 경우는 번역을 한 다음에 출판사가 갖고 있던 일본어판과 비교해보았다. 그랬더니 원서에서는 엄마 쥐와 여섯 자매가 나오는데, 일본어판에서는 엄마 쥐와 여섯 형제자매로 나온다. 이건 틀린 번역이라기보다 독자를 의식해서 일부러 형제자매로 바꾼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라피크 샤미는 다마스쿠스 출신의 노동자 작가로 사회 비판적 의식을 지닌 인물이다. 그가 엄마와 자매들만 있는 가정으로 설정한 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여자들만 있는 가정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더 먹고 살기가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어판을 참조하기는 했지만 원서대로 엄마와 자매만 있는 가족으로 옮겼다. 작은 부분이지만 번역은 작품에 대한 해석을 품고 있다.
반대로 외국어 번역본을 참조한 게 큰 도움이 되었던 적도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타샤의 어린이 정원』을 번역할 때다. 난생처음으로 시집을 번역하는지라 오랜만에 동시 동요집도 찾아 읽고, 어떤 식으로 번역하면 좋을까 여러모로 궁리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는 이미 그 시집이 여러 차례 번역된 것을 알았고 출판사에 의뢰해 그중 몇 가지 판본을 구해서 보았다. 궁금했던 부분을 찾아보니 번역자에 따라 조금씩 표현이 달랐다.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내가 해석한 대로 우리말로 옮겼다. 내가 번역한 이 책은 한국 아동문학 연구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춘천교대 조은숙 교수가 원작자가 밝혀지지 않은 방정환의 번안시를 연구하다가, 이 동시집과 대조해 원전이 이 시집에 실린 「등 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증한 것이다. 원래 시에서, 화자인 아이는 등 켜는 사람인 래리 아저씨를 보면서 자기도 크면 래리 아저씨와 함께 등 켜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방정환의 번안시를 보면 내용이 다르다. 어둠을 밝히는 사람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 등불을 밝히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식민지 시절인 만큼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빛을 만방에 밝히려는 의도를 담아 개작한 것이다.
번역자는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이쪽 언어권에서 저쪽 언어권으로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뱃사공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옮긴 작품이 멋지면 나도 어쩐지 우쭐하다. 뭔가 뿌듯한 일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진짜 멋진 건 그 작품이고 그 작품을 쓴 작가다. 번역자는 그 멋진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거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번역 그림책을 낼 때 번역자와 편집자는 함께 일하는 한 팀일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좋은 번역은 항상 좋은 편집자와 함께한 작업에서 나왔다. 번역자는 아무래도 작가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데 비해, 편집자는 독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자와 편집자의 원활한 대화와 소통이야말로 멋진 번역 그림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다.
엄혜숙_어린이책 번역가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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