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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r 30. 2022

내면 마주하는 마음 처방전 ‘그림책테라피’

그림책깊이읽기

그림책테라피는 몇 권의 그림책을 활용해 진행하는 워크숍 형식의 프로그램입니다. 4~6명 정도가 모여 그림책테라피스트가 그림책을 읽어주고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발견했는지 등 그림책에 대해 간단한 질문을 받으면 자신이 느낀 점을 그대로 워크시트(활동지)에 적습니다. 그리고 이를 참가자들과 공유하지요. 

그림책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마주보고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기분’이나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받아들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어른이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요소를 찾고 행동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그림책테라피입니다.

그림책테라피는 건축사이자 대기업에서 직원 교육을 담당했던 오카다 다쓰노부 씨가 그림책에 심리학과 자기 계발법의 공통점을 발견해 고안한 프로그램입니다. 2007년부터 워크숍 형식의 강좌를 일본 각지에서 열고 2009년 그림책테라피스트 협회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약 1000여 명의 그림책테라피스트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심리학의 관계 

도쿄에서 십년 이상 체재하며 일과 가사에 지친 일상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위로를 받고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저뿐 아니라 그림책을 읽은 분들이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왜 어른인 내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의 매력에 빠졌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질문에서 출발해 그림책테라피를 만났습니다. 

일하는 엄마가 늘다 보니 자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잠들기 전 책 읽어줄 때 정도라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고르다 자신이 그림책에 빠져버린 어른도 있지만, 제가 만난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 중에는 그림책을 통해 자아 발견이나 그림책의 깊은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는 독신 분들도 적지 않지요. 과연 그림책의 어떤 부분에 어른들은 끌리는 걸까요?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어른과 어린이의 그림책 읽기 차이에 대해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어린이는 그림책 속에 들어가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해서 체험하지만, 어른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가치관을 더해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투영시키며 그림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해주는 거지요. 그림책이라는 처방전으로 마음의 내면을 마주할 때 위로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셈입니다. 

특히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등장인물들이 행복을 향한 그림책들은 심리학이나 자기 계발법에서 거론되는 ‘긍정 심리학’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어려운 이론으로 접하는 것보다 그림책을 활용하면 더 재미있고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어떤 심리 치료보다 더 쉽게 뜻밖의 감정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걸 체험할 때는 그림책 자체가 뛰어난 심리학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지점은 그림책테라피를 통해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림책 읽는 어른들 현상 

최근 그림책을 좋아하고 스스로 찾아 읽는 어른들이 많아진 덕분에 제가 개설한 워크숍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옵니다. 그림책에 대한 어른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하며 그림책이 마음을 직접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을 실감하기도 하지요. 그림책을 접한 어른들의 반응은 굉장히 다양한데, 한가지로 모아지는 것이 있다면 

“그림책에는 어른이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

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세나 게이코의 토끼와 너구리의 싸움을 그린 그림책 『이웃집 너구리』를 함께 읽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네요”라고 메시지를 전하자,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아요” “고부 갈등을 다룬 그림책 같은데요?” “이건 심리학에서 말하는 미러링(mirroring) 효과를 말하는 거네요”처럼 실로 다양한 시점에서 감상이나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읽어주었을 땐 이렇게까지 다양한 감상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이라서 가능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양육 방식이나 시어머니와 며느리, 미러링 효과 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림책에서 언급되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건 그림책을 받아들일 때 내면이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이렇게 자신의 가치관이나 살아온 경험 등 ‘자기다움’을 투영시켜 이야기를 자신에게 끌어들여 읽어냅니다. 

사실 이 부분은 혼자 읽을 때는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자신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관점이기 때문이지요. 여럿이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누면 자신에게 없던 관점이나 다른 가치관을 만나게 되어 시야가 넓어집니다. 어른들이 그림책을 함께 읽기 시작하는 건 바로 이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래왔고요. 


그림책테라피의 효과 

그림책은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많아서 자신과 전혀 다른 해석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림책테라피 활동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니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내 모든 생각과 발언이 받아들여집니다. 누군가 내 생각을 받아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더군다나 참가한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 지위에 있을지라도 그림책 앞에서는 그저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만 나눌 뿐이니 가장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따뜻한 교류를 하게 됩니다. 이른바 ‘착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거지요. 

또한 그림책을 즐기는 사이에 어느새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고 자신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 사고방식이 내 행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되면 조절할 수 있지요.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따뜻한 네트워크 형성과 그림책을 즐기는 사이에 마주하게 된 내면을 통해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변화를 도모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림책테라피의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치유하는 그림책테라피 

일본 그림책테라피스트 협회장 오카다 다쓰노부가 쓰고 제가 함께 기획한 『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에서 상황에 따라 처방한 그림책 중 몇 권을 소개하겠습니다. 실제 그림책을 읽고 ‘나에게 건네는 질문’에 답을 해보면 그림책테라피를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을 때

『난 내가 좋아!』(낸시 칼슨 글·그림 / 보물창고) 


우리는 남에게 항상 상냥하고 친절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정작 자신을 돌보거나 소중히 여기는 걸 잊을 때가 있지요. 자신을 소중히 여기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그림책에 그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보물창고(『난 내가 좋아!』)

주인공에게는 아주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야, 참 멋지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며 말하지요. 소중한 자신을 위해 책도 읽어주고 좋은 음식도 먹고 스스로 기분 좋게 만들고 격려하며 돌봅니다. 소녀는 “난 항상 나일 뿐이야. 그리고 난 그런 내가 좋아!”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건네는 질문 : 자신의 마음을 여유롭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또 당신은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가요?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을 때

『알사탕』(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혼자 구슬치기를 하던 동동이는 새 구슬이 필요해 문방구에 갑니다. 못 보던 구슬을 발견한 동동이는 구슬이 아닌 알사탕을 삽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무늬의 알사탕을 하나 입에 문 순간 놀랍게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그것은 평소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파의 하소연이었어요. 다른 알사탕을 입에 물었을 때도 반려견 구슬이, 그리고 늘 잔소리만 하던 아빠 등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가까운 존재들의 마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알사탕 덕분에 동동이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진심을 깨닫게 됩니다.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관계는 부드러워집니다. 

서운한 마음을 느낀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고 나니 사실은 나를 위한 행동이었음을 알게 된 경험이 있지요. 이처럼 속마음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해하게 되고 공감이 싹틉니다. 귀 기울여 보세요. 누군가 나에게 털어놓고 싶은 속마음을 향해 안테나를 세워보세요. 동동이의 알사탕은 없지만 우리에겐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나에게 건네는 질문 : 지금 누구의 속마음을 듣고 싶나요? 


내 안에 있는 신비로운 에너지 이끌어내기

『중요한 문제』(조원희 글·그림 / 이야기꽃) 


수영 강사인 네모 씨에게 ‘원형 탈모’라는 중요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를 만나러 가지만 의사가 처방한 치료법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참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거기에다 스트레스가 제일 위험하다고 하고요. 이로 인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네모 씨의 삶은 괴롭기만 합니다. 치료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소소한 삶의 기쁨들이 네모 씨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닫습니다. 

ⓒ이야기꽃(『중요한 문제』)

우리는 때때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남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나 자신을 버려두기도 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고 잘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쓰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내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은 작은 기쁨들이 내 힘의 원천입니다. 

*나에게 건네는 질문 : 내 삶을 지탱해주는 일상의 기쁨은 무엇인가요? 


김보나_그림책테라피스트, 『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 공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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