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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pr 08. 2022

별이 내리는 밤에

아기 사슴의 별빛 여행

별이 내리는 밤에

센주 히로시 지음 / 36쪽 / 18,000원 / 열매하나



깊은 숲속에 사슴 가족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림은 마치 별을 뿌려놓은 듯한 밤하늘이 한 면에 나오고, 다른 한 면은 사슴의 움직임을 그림지도로 표시해주는 작은 ‘지도 상자’가 함께 펼쳐진다. 처음에는 사슴 가족이 함께 어울려 있다가 세 번째 장면부터 아기 사슴이 홀로 강과 숲,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어느 도심에까지 이른다. 도시 중심을 걷는 사슴은 무심하고 도시의 밤도 무심하다. 사람의 흔적은 전혀 없고 광고판의 조명과 네온사인만이 사슴의 존재를 밝힐 뿐. 


도심 한 편으로 흐르는 강물 또한 물이 아니라 하늘과 똑같은 별이 쏟아져 내린 우주처럼 보인다. 아기 사슴은 구불구불 다시 먼 숲을 한 바퀴 돌듯이 그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지도 상자에는 이 아기 사슴이 지나온 길을 빨간 색연필로 표시해 가족과 다시 만났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글이 없는 그림책임에도 왼편의 지도 그림과 오른편의 사슴, 밤 풍경을 보면 그 자체로 이야기가 나온다. 아니 오히려 여기에 이야기가 없는 편이 훨씬 보기 편하다. 우연히 별똥별을 보게 된 아기 사슴, 그것을 찾아 떠난 여행일까? 알 수 없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보게 된 별똥별을 보고 난 뒤 그의 걸음은 빨라지고 날은 뿌옇게 밝아 온다. 


일본화의 전통을 잇는 화가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평가를 받는 현대미술 작가인 센주 히로시의 유일한 그림책이어서 이 작품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다. 글이 있으면 더 이상할 것 같은 분위기는 그래서 더욱 그림을 한없이 반복해서 보게 만든다. 이유는 사람 사는 땅이 아닌 우주공간에서의 별자리 때문이기도 하다. 이 그림책 뒤표지에는 북극성,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아, 페르세우스자리 등이 그려진 우주 천체가 있는데 아기 사슴이 다닌 길을 보여주는 책 속 지도의 별 위치와 일치한다. 그 별의 색상을 따라가면 이 사슴은 한밤에 우주 천체를 돌다가 온 것과 똑같다. 


하나의 그림책으로 보여주는 소박한 아기 사슴의 밤 여행은 우주 생성 136억 년 전부터 내뿜는 무한한 별빛들을 안겨주고야 만다. 마치 우리가 오래전 잊어버렸던 그 무엇인가를 돌려받는 것처럼. 자신의 아이와 젊은 독자를 위해 보여주고 싶었던 이 그림이 결국 작가 자신을 위한 책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바친다는 고백일 수도 있다. 

나도 자연과 생명 이전의 아득함을 우주 천체를 보며 문득 다시 깨우친다. 


정병규_행복한그림책연구소 소장,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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