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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pr 07. 2022

바늘 아이

초록빛 희망을 찾다

바늘 아이

윤여림 글 / 모예진 그림 / 64쪽 / 15,000원 / 나는별



『바늘 아이』를 처음 읽었을 땐 그림책의 주제가 금방 와닿지 않았다. 회색빛 면지를 넘기고 본문이 시작되는 첫 장면에 언덕 너머 높은 고층 빌딩들이 보이고, 작은 아파트 단지가 숲으로 둘러싸인 고지대에 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마중 나온 엄마들이 놀이터로 간다. 주인공 윤이와 놀던 친구들이 도랑을 건너가서 윤이를 부르는데, 윤이는 도랑이 무서워 망설인다.


아이가 깊이 있는 도랑을 뛰어넘어야 하는 첫 경험은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 혼자 심부름을 가거나,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 것,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는 것이 두근거리는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처럼. 그래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얘기하나 생각했는데, 마치 신화나 전설 같은 다른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윤이가 도랑 앞에서 망설이는 장면까지는 흑백이고, 도랑을 들여다보고 바늘을 발견하는 장면에선 윤이의 윗옷이 노랑이 되고 다른 사물들에도 부분적인 색이 생긴다. 윤이가 바늘을 손에 쥔 다음부터는 시궁창이었던 도랑이 맑은 물이 흐르는 숲으로 변하면서 화려한 초록빛이 펼쳐진다. 바늘을 쥔 아이는 도랑을 훌쩍 뛰어넘고 숲을 누비며 즐긴다. 그러다 바늘을 떨어뜨리자 아이도 나무에서 떨어지고, 나무숲은 사라진다. 엄마와 친구들은 다시 도랑 너머에서 윤이를 부른다. 이젠 도랑을 쉽게 다시 뛰어넘을 수 있다. 엄마와 친구들은 윤이가 만났던 숲을 모른다. 


윤이와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본문 첫 장면과 달리 흑백이 아닌 초록이 가득하고 언덕 너머엔 빌딩 대신 하늘에서 반짝하고 웃는 ‘바늘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 그림책의 부록인 듯 하늘 바늘이 바늘 사람이 된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뭇잎이 찢어지면 꿰매주는 일을 했던 하늘 바늘이 사람들이 저지른 욕심 때문에 캄캄한 어둠에 빠져 바늘 사람이 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 ‘바늘 아이’를 만나 깨어났다는 이야기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바늘 사람에게 새로운 꿈으로 이어지는 작은 틈이 열리고, 책의 뒤 면지는 앞 면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초록이다. 사람들이 높은 집을 짓고 욕심을 맘껏 부리며 망가뜨린 자연을 바늘 아이가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초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파스텔, 색연필과 연필로 현실과 판타지, 두려움과 희망을 표현한 그림이 아름답고 두 배로 넓어 시원하게 펼쳐진 장면이 경이롭다. 윤이는 도랑이라는 두려움을 뛰어넘고 바늘 사람이 보여주는 희망의 풍경을 보았다. 우리는 어떤 두려움을 뛰어넘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어둠 속에 묻혀있는 바늘 사람을 다시 깨워 일으킬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우리는 그 길을 찾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배홍숙_행복한그림책연구소 연구실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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