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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pr 18. 2022

이야기는 축제야

‘이야기’라는 생명력을 지닌 존재

이야기는 축제야

펩 브루노 글 / 안드레아 안티노리 그림 / 김다은 옮김 / 48쪽 / 14,000원 / 단추



3년 전 여름날로 기억해요. 금방이라도 태풍이 덮칠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던 오후였어요. 교실에서 한창 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픽’ 소리가 나더니 형광등이 꺼지는 거예요. 

“엇, 선생님 정전인가 봐요!” 

세형이의 말에 선풍기를 바라보니 날개를 돌리는 모터가 뱅글뱅글 돌더니 힘을 잃고 멈추더군요. 알고 보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두꺼비집이 내려앉았더라고요. 교실은 어두컴컴하고 공기는 꿉꿉한데 선풍기도 없이 앉아있어야 하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다시 분위기를 잡고 교과서를 펼치려니 아이들이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합니다. 지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하네요. 

“선생님~ 그러지 말고 무서운 이야기 해주세요!” 

순간 스물두 개의 눈이 초롱초롱한 빛을 내며 제 입술 쪽을 바라보는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야기 창작의 바통을 아이들에게로 넘겨주면 어떨까 싶더군요. 슬쩍 오싹하게 운을 띄우면서 이렇게 질문했죠.


“너희들, 학교에 밤 9시까지 있어봤어? 선생님이 수업 준비하느라 혼자 교실에 불 켜놓고 있어봤는데 말이야, 뭐가 제일 무서운 줄 알아?”


숨죽인 채 제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아이들이 어느새 눈알을 굴리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저마다 밤 9시의 학교를 떠올리며 하나의 이야기 세계를 창조하는 거죠.


“캄캄한 밤에는 화장실이 무서울 것 같아요.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휴지장수가 변기 아래에서 막 종이를 내밀 것 같고요. 으악!”

“저는 캄캄한 급식실이요. 지난번에 읽어주셨던 그림책 『귀신 안녕』에서처럼 파란 귀신이 나타나서 막 어두운 급식실을 돌아다닐 것 같거든요.”


이렇게 저마다 옛이야기나 이전에 읽었던 그림책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펼쳐내느라 어느새 더운 것도 싹 잊었네요.

이럴 때 같이 읽어보면 좋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 최고의 이야기꾼 펩 브루노가 쓴 그림책 『이야기는 축제야』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 안에 잠들어있던 이야기꾼이 깨어나거든요.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으로 보고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내는 과정입니다. ‘이야기’라는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세월이 흘러도 소멸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의 피와 살 속에서 생동하는지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눈을 반짝이며 몰입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 이야기란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력을 통해 생생하게 보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종이나 연필, 컴퓨터 키보드도 없이 모여 앉아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놀았잖아요. 한 시절이 지나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어져도 빨간 종이며 귀신 같은 이야기는 생명력을 지닌 채 살아남습니다. 산이 깎이고 강물은 말라도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이야기는 소멸되지 않는 거죠. 소멸되기는커녕 아이들의 피와 살 속에 그대로 생동하며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니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자,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는데요. 이제 비가 어느 정도 그치는 걸 보니 슬슬 제가 나서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군요. 그러니까 밤에 혼자 교실에 남아있다 보면 대체 뭐가 가장 무섭냐고요? 저는 귀신이나 좀비보다도 ‘계단’이 가장 무섭더군요. 캄캄한 복도를 지나 더듬더듬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꼭 마지막에 발을 잘못 헛디뎌서 넘어질 뻔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고요? 여러분에게만 알려드릴게요. 저는 계단 개수가 몇 개인지 꼭 외워둔답니다. ‘하나, 둘, 셋… 열여덟.’ 그렇게 속으로 세어가며 계단을 내려가면 아무리 늦은 밤까지 혼자 학교에 남아도 넘어지지 않고 집에 갈 수 있거든요.


어째, 무서운 걸 기대했는데 도깨비도 호랑이도 아닌 계단 이야기라니… 조금 허탈하신가요? 그럼 이쯤에서 당신께 이야기를 청해 들어볼게요.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오싹한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만약 당신이 학교에 밤 9시까지 남는다면 어떤 신통한 이야깃거리를 발견할지 궁금해지는데요. 『이야기는 축제야』를 읽어보니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의 입과 듣는 사람의 귀에 살고 싶어 한대요. 그러니 어서 입을 열어서 당신 안의 이야기가 단어와 문장을 타고 밖으로 나오도록 해주세요. 그 꿈틀대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저도 또 하나의 창작 세계를 이어나갈 테니까요. 



이현아_서울개일초 교사, 『그림책 한 권의 힘』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2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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