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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pr 21. 2022

빅토르

반성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고하노니

빅토르 

자크 마에스, 리서 브라에커르스 글·그림 / 심선영 옮김 / 48쪽 / 19,800원 / 고트



『빅토르』를 읽고 떠오른 단어는 ‘반성’이었습니다. 사전에는 반성이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반성은 후회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앞으로 후회할 만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변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빅토르’는 결코 반성을 이루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치타를 잡는 게 꿈이었던 사냥꾼 빅토르는 드디어 사냥에 성공합니다. 너무 뿌듯한 마음에 거실에 치타를 그대로 전시해둘 정도지요. 자고 일어나 ‘내 손으로 잡은 녀석’을 ‘새로운 눈’으로 제대로 감상할 예정입니다. 이 장면에서 빅토르의 욕망이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을 박제하여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이미 죽은 동물들을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 간직하는 것은 대체 어떤 마음인 것일까요? 


꿈속에서 빅토르는 자기가 죽인 치타의 친구들을 만납니다. 치타들은 친구를 잃었기 때문에 아주 슬프게 울고 있습니다. 꿈에선 깬 빅토르는 일어나서 후회합니다. 빅토르에게도 가여운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빅토르에게 조금 ‘인간다운’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의 감정을 공감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로 잡으려는 마음 말이지요. 



빅토르는 치타 가죽을 옷처럼 만들어 입고 숲으로 돌아가 자신이 진짜 치타인 것처럼 굽니다. 치타들은 다시 돌아온 친구가 반가워서 함께 먹고 자고 놀면서 함께 지냅니다. 빅토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해주기도 하고 자기들보다 느리고 부족한 빅토르를 보살펴줍니다. 치타들로 인해 빅토르는 처음으로 외롭지 않은 마음과 진정한 우정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치타 한 마리가 빅토르의 꼬리를 갖고 놀다 떼어버린 것이지요. 진실을 알고 화가 난 치타들은 이 괘씸한 인간의 팔과 다리를 묶어 불 위에 올려 둡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빅토르의 꿈이었습니다. 죽다 살아나는 악몽 덕분에 빅토르는 이제 치타를 사냥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꿈을 통해 깨우친 인간이 반성하는 이야기로 끝났다면 정말 좋았을 테지만 작가들은 한 가지 장면을 덧붙였습니다. 바로 반성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빅토르는 이제 얼룩말을 사냥합니다. 결심한 대로 치타를 잡는 건 아닌 셈이니 빅토르 입장에선 아주 양심이 없는 일은 아닐지도요. 


작가는 ‘역지사지’의 상황을 통해 풍자하는 방식으로 동물과 인간의 처지를 바꾸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지만 매우 현실적인 결말을 제시하며 인간의 오만을 깨버립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전혀 반성의 여지가 없는 빅토르의 순진한 얼굴을 마주하니 정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빅토르와는 다른 사람일 거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빅토르』는 인간다움을 잊지 않으려 반성하는 우리를 위한 아름다운 악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지현_어린이청소년문학서점 책방 사춘기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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