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Apr 20. 2022

모두가 ‘꽃’이라는 아름다운 존재 의식과 공동체

이명애 글·그림 / 96쪽 / 21,000원 / 문학동네



이명애의 그림책 『꽃』은 이미지와 의성어로 사계와 삶을 형상화한다. ‘동그라미’ 모티프는 꽃이고 연지 곤지고 사람의 얼굴이고 눈이고 구멍이자 끊임없이 반복되는 매일이고 사계절이고 일 년이고 삶의 회귀다. ‘꽃가마’로 시작되는 『꽃』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처럼 리듬이 밝고 경쾌하다가 “소리도 온기도 향기도 아무것도 없는 동그라미”를 만나다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상여’는 하얀 동그라미에 파묻혀 흰 종이 안으로 사라진다.

“또르르르, 오늘 아침 머릿속에 들어온 빨간 동그라미를 따라가 봅니다. 하나가 둘, 둘에서 셋이 되고 어느새 머릿속을 가득 채운 동그라미들이 종이 위로 옮겨집니다. 생각은 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또렷이 남기도 합니다. 그 조각들을 모아 그림책을 만듭니다.” 

『꽃』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작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다시 보니 동그라미는 ‘꽃’이자 ‘생각’이다. 동그라미는 뭉게뭉게 피어나는 기억이자 꽃이라는 기호이며 풍경이다.


꽃가마 위로 떨어지는 동그라미들은 눈꽃처럼 흩날리다 다음 펼침면에선 커다란 동그라미들이 꽃가마를 가린다. 페이지를 넘기는 방향으로 꽃가마는 전진하고 꽃가마의 창문을 여는 이미지로 확대되며 독자는 가마의 창문을 여는 주인공과 다시 마주한다. 독자는 “드르륵” “드륵” 의성어를 읽는다. 문덕수 시인이 「꽃과 언어」라는 시에서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고 표현한 문장처럼 등장인물을 맴돌며 감탄하는 나비 같다. 즉 작가에게 생각은 동그라미고 의성어는 나비가 아닐까?


그는 다양한 생각을 다양한 색깔의 동그라미를 이미지로 남긴다. 모란이 연속적으로 그려진 가마를 탄 주인공은 연지 곤지를 떼서 공놀이를 즐긴다, 이어 노란 동그라미, 아니 꽃향기를 시각화한 노란 동그라미들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니 유채꽃밭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또한 따라다니던 생각, 즉 반복적인 동그라미는 리듬체조를 하는 도구가 되고 어느새 별이 되고 주인공은 성좌를 그리듯 점을 잇고 이야기의 리듬을 만든다.


서정시와 예술에서 ‘꽃’은 보편적으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회화에서 ‘시든 꽃’은 시간을 나타내는 알레고리다. 그러나 이명애의 ‘꽃’은 시든 꽃 모양을 보고 시든 걸 보는 것이 아니라 국화꽃을 연상할 수 있는 흰색으로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는 다양한 꽃을 색으로 연출한다. 그러므로 흰 바탕에 여러 색의 동그라미로 쓰인 꽃은 삶을 상징하고, 대조적으로 형형색색의 동그라미 꽃밭에 흰색의 동그라미로 쓰인 꽃은 죽음을 상징한다. 삶과 죽음이 안감과 겉감처럼 겹쳐져 있다. 동그라미는 그래픽적이며 디자인적으로 보편화된 꽃이자 얼굴이며 돌고 도는 인생이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꽃비가 내려옵니다. 내가 누구인지 잊어도 좋겠습니다.” 

뒤표지의 문장은 어느새 해탈한 목소리다. 모란꽃이든 풀꽃이든 꽃은 꽃이다. 『꽃』은 디자인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프레임을 변주하며, 전통적인 모티프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펼쳐낸 그래픽 예술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김시아_그림책 연구자,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객원교수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