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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pr 28. 2022

안데르센상 수상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세계

‘자유로운 선, 물, 새 그리고 아이’

“뭐라도 한번 해보고 싶고 ‘최선을 다해서 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지’ 이런 마음이었고요. 볼로냐 도서전이 저에게 굉장히 많은 영감을 준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자유로운 동네라면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고 즐거운 동네라면 안 될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동네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좋은 책을 만들면 내주겠지. 최선을 다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_이수지, 「KBS 다큐On」 ‘K-컬처 전령사, 그림책이 달린다’ 인터뷰 중에서




이수지 작가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용기가 있는 그림책작가다.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영국에서 북아트를 공부한 후, 이탈리아 코라이니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2)를 출간했으니 말이다. 이후 『토끼들의 밤』(2003)은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상을 수상했다. 『파도야 놀자』(2008)는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는데 미국 일러스트레이터협회가 주는 ‘올해의 원화’ 금메달을 수상했다. 글자가 없는 이 그림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14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글자가 없는 그림책이니 ‘번역’이라는 말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림’이라는 만국 공용어와 ‘아이’와 ‘놀이’라는 보편적인 모티프, 또한 전 세계 절반의 인구가 좋아한다는 파란색을 주요 색으로 표현한 『파도야 놀자』는 이미 전 세계의 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책읽는곰(『토끼들의 밤』)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 심사위원 실바나 솔라는 인터뷰에서 “『파도야 놀자』는 뻔하지 않은 특별함과 단순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수지 작가는 기호화하는 작업에 탁월하고 글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듯 그림을 그려내는 능력이 뛰어납니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이수지 작가는 올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어린이 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 상은 함께 노력한 결과이다. 그동안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졌고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 회원국인 한국위원회(KBBY)가 이수지 작가를 추천하고 오랫동안 준비한 덕분이다. KBBY 내에 있는 안데르센상 추천위원회, 도서추천위원회, 작가연구회 등에서 자료를 축적하고 영문으로 자료집을 준비하여 작가를 추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찌감치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이수지 작가는 지속적으로 좋은 그림책을 창작할 뿐 아니라 글작가와의 협업과 번역 작업도 하고 그림책 창작공동체 ‘바캉스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나라 그림책작가들과 함께하며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렇게 연대와 협업, ‘한류’라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 속에 이수지 작가의 작품이 더욱 빛나는 해가 되었다.


이수지 작가 그림책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주요 모티프는 아이, 새, 물, 놀이다. 번역이 필요 없는 그림으로 어딘가에서 볼 수 있는 아이가 놀이하는 모습은 어릴 적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함께 보기에도 좋은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작가는 이야기한다. 글이 없어서 독자의 해석은 더욱 자유롭다. 이수지 작가가 추구하는 “그림책은 자유다”라는 표현과 어울리는 이야기 방법이다.


① 그림책과 물의 리듬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2021)가 출간되었을 때 알부스갤러리에서 「여름 협주곡」 이수지 개인전이 있었다. ‘하얀 벽’에 걸린 이수지 작가의 작품과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비발디의 「사계」로 『여름이 온다』를 뜨겁게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여름이 온다』는 물놀이의 리듬, 음악과 미술의 교차, 선과 바람의 리듬이 비발디 「사계」 3악장에 맞추어 구성된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펼치면 음악회에 온 느낌이 든다. 커튼이 열리고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연주자 중엔 이수지 작가의 자화상도 보인다.

ⓒ비룡소(『여름이 온다』)


1악장은 신나는 아이들의 물놀이다. 시골에 살던 어느 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아이들이 물놀이하던 에피소드를 책에 담았다. 2악장은 더욱 음악적이다. 오선지 위에 여름 소낙비가 내리고 왼쪽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은 작가가 즐거웠던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 같다. 이어 3악장이 되니 폭풍이 몰아친다. 자유분방한 선들은 어느새 거칠고 때론 신경질적이다. 거친 바람의 리듬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은 곧 연주가 끝나는 걸 아는 것처럼 즐겁고 의연하다. 『여름이 온다』는 루시드폴의 노래에 그림을 그린 『물이 되는 꿈』(2020)에 이어 물의 리듬과 음악이 잘 어우러지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음악과 미술이 만나니 독자가 책을 펼치는 순간, 값비싼 그림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콘서트에 가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이 점이 그림책의 매력이다.


② 그림책이라는 시공간 또는 놀이공간

이수지 작가에게 그림책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공간이다. 그의 그림책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영감을 받고 오마주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연출을 한다. 그림책 안에서 ‘이야기’에 끼어드는 ‘화자의 손’ 또는 ‘창작자의 손’을 드러낸다. 이러한 ‘메타픽션’적인 특성은 『선』(2017)에서도 드러난다. 스케이트를 탄 김연아가 빙판 위에서 자유롭고 아름다운 무대를 선사하듯 이수지 작가는 그림책 『선』에서 자유로운 선을 리듬감 있게 표현하며 스케이트를 즐기는 아이를 보여준다. 이 그림책은 앞 면지에 연필, 지우개, 종이가 그려져 있고 뒤 면지에 완성된 그림과 차곡차곡 쌓인 종이를 그려 ‘이야기’는 작가가 그림책을 그린 과정이란 걸 보여준다. 또한 이야기 중간에 주인공 아이가 빙판 위에서 빙그르르 넘어진 모습을 보여준 그림은 그림에 실패하여 구겨진 그림을 펼친 그림 위에 중첩시켜 놓았다. 이렇게 ‘이야기’라는 허구의 공간에 작가가 개입하는 현실, 즉 ‘그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메타픽션 구조를 독자에게 보여주며 그림책이 작가의 창작 공간임을 재인식시킨다. 그러므로 그림책의 다층적인 시공간을 확장한다. 이 모든 것이 ‘그림책’이라는 틀에서 이루어진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돋보이는 그릇에 담았을 때 더 맛있어 보이는 것처럼 이수지 작가는 그림책의 내용에 따라 그림책이라는 ‘그릇’ 또는 ‘건축물’을 내용에 알맞게 디자인하고 구성한다. 그림으로만 말하는 이야기는 그림책의 판형, 면지, 제본선 등 그림책의 물성과 구조, 북 디자인에 따라 조화롭게 관계를 맺는다. 책의 제본선이라는 특성을 이용하여 그림책의 공간으로 연출하여 만든 ‘경계 3부작’ 『거울속으로』(2003), 『파도야 놀자』(2008), 『그림자놀이』(2010)는 작가가 직접 『이수지의 그림책』(2011)에서 작업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거울속으로』는 세로로 긴데 제본선을 경계로 마주 보는 두 면을 이용해 데칼코마니 작업부터 인물의 표정과 몸짓의 간격을 통해 낯선 상황을 연출하고, 『파도야 놀자』는 아이의 공간과 바다의 공간을 제본선을 경계로 공간 분할을 하며 가로로 긴 판형은 넓은 바다를 연상시킨다. 이어서 『그림자놀이』는 제본선을 기준으로 위에는 현실, 아래는 그림자의 공간으로 배치하여 현실과 상상을 병렬적으로 연출한다.


③ 어린이성

새집을 많이 지어준 아버지 영향 탓인지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엔 주인공 아이와 더불어 ‘자유’를 상징하는 새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검은 새』(2007)는 제목과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석판화로 표현된 강렬한 검은 새가 “울고 싶은” 아이를 등에 업고 바다 위를 날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검은 새』에 등장한 단발머리 여자아이는 『파도야 놀자』에서 어느새 가까이 와있는 갈매기들과 놀고, 『그림자놀이』에서 아이는 자유분방하게 상상하며 그림자와 논다. 이때도 새가 등장한다. 자유로운 새가 어린이성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길벗어린이(『검은 새』)


“아이들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가차 없잖아요. 한번 봐서 아니면 덮어버리고 그냥 던져버리는. 그런데 그 판단이 맞거든요. 대개는. 이 세계가 정말 매력적이구나. 세계는 정말 복잡다단하고 살기 힘든 곳이지만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가장 직관적으로 세상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방법이 그림책이구나 라는 것을 여러 번 느낀 것 같아요.” _이수지, 인터뷰 중에서


존 버닝햄, 엔조 마리, 가브리엘 뱅상의 작품과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이수지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삶의 오아시스를 만들고 있다. 정치를 비롯한 어른들의 탐욕의 세계와 거리가 먼 곳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평화로운 공간을 만든다. 그림책으로 만드는 헤테로토피아. 즉 ‘현실에서의 유토피아’는 독자가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 만들어진다.


우리 사회는 지역, 세대, 남녀 간의 대결 구도로 갈등이 심한 사회다.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성을 되찾으며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속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뛰어넘듯 아이부터 어른까지 우리 사회의 수없이 그어진 경계선을 지우고 함께 노는 연습을 해보자. 폴짝!



김시아_그림책 연구자,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객원교수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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