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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pr 29. 2022

파도야 놀자

소녀, 갈매기 그리고 파도

파도야 놀자 

이수지 글·그림 / 36쪽 / 9,500원 / 비룡소



글이 없는 그림책은 그림보다 글에 익숙한 어른들에게는 낯설고 어렵다. 오랫동안 그림책과 친하게 지내온 필자에게도 그림뿐인 그림책을 감상하는 일은 말수 적은 신중한 사람을 마주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수지, 그이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널리 알려진 그림책 작가다. 첫 책『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탈리아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파도야 놀자』역시 미국에서 출판된 것을 비룡소에서 다시 펴냈다. 이수지는 어쩌면 말이 필요 없는 작가다. 그림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뚝심 있는 예술가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그이의 그림책 한 권 한 권을 신뢰한다.


세로보다 가로가 긴 그림책을 펼치면 옅은 선의 지평선을 만나게 된다. 왼쪽 면에는 오른쪽 바다를 향해 달리는 여자아이가 있고, 그 뒤로 양산을 든 엄마와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갈매기떼가 있다. 오른쪽 면의 꼬리가 긴 글자체만으로도‘노올자’로 리드미컬하게 읽히는 책제목‘파도야 놀자’덕분에 지평선은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전작인『거울』에서처럼 책 가운데의 접힌 부분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 면이 모래사장 대 바다, 혹은 흰색과 검은색 대 파란색으로 대비된다.



내지를 펼친다. 굵은 검은 선으로 표현된 여자아이가 오른쪽의 파란 바다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뒤로는 갈매기 떼가 여자아이의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 다음 장, 모래사장 쪽으로 쏟아진 파도에 놀란 아이가 달아난다. 갈매기도 재빨리 달아난다. 또 다음 장, 이제 아이는‘파도야 물러서라’는 시늉으로 바다를 향해 으름장을 놓는다. 갈매기들도 힘차게 날개를 저으며 여자아이와 행동을 같이한다. 이렇게 햇빛 찬란한 어느 여름날, 바다로 놀러나온 아이는 갈매기들과 함께 파도와 어울린다.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물결들과 장난을 치던 아이는 이야기의 중반 즈음에 이르러‘풍덩풍덩’파도를 밟고, 갈매기들은 아이의 머리 위에서 튕겨 오른 물방울로 깃털을 적신다. 이어진 장면에서는 아이의 행동이 더욱 과감해지고, 신이 난 갈매기들의 날갯짓도 분주해진다. 그러나 아이 키를 넘기는 큰 파도가 다가오자 아이와 갈매기는 바삐 모래사장으로달아난다.

‘ 여기까지는파도가못따라오겠지. 메롱!’

하며파도를향해혀를내민아이. 그러나안심은금물이다. 한 장만 넘기면 양쪽 면이 온통 파란 물바다다. 다시 다음 장, 지금까지 검은 윤곽선으로 표현된 아이의 옷이 파란물로 흠뻑 젖는다. 하늘도 파란색으로 가득하다.


이야기의 종반부, 파도가 모래밭에 흘리고 간 조가비와 불가사리, 소라 고둥을 줍는 아이와 갈매기들이 정겹다. 이제 바다와 하나가 된 아이가 해야 할 일은 모래사장을 토닥거리며 파도와 작별 인사하기다. 갈매기들도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아이에게 슬쩍 고개를 돌린다. 먼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갈매기 떼 아래로 늦은 오후의 파도가 잠잠해진다. 어느덧 양산을 쓴 엄마를 따라 걸어가는 모래사장 위로 아이의 그림자도 길어져 있다.


『파도야 놀자』는 작가 이수지의 『검은새』와 『동물원』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색을 극도로 절제해 파랑, 하양, 회갈색만 사용한 점에서 검은색으로만 까마귀를 표현했던 『검은새』가, 주인공 여자아이가 동물들과 교감하는 차원에서 『동물원』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필자는 그이의 홈페이지(www.suzyleebooks.com)에 들어가 작가의 작품 목록을 훑어보았다. 『 열려라! 문』 『나의명원화실』 등이 궁금해진다. 세계를누비며 한국 그림책작가의 실력을 보여 주는 그이의 앞으로의 행보 역시 믿음직스럽다.



김영욱_『그림책, 음악을 만나다』 『책벌레 대소동』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0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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