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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02. 2022

강이

강이를 꼭 다시 만나길

강이

이수지 글·그림 / 80쪽 / 13,000원 / 비룡소



내게는 까만 복슬강아지가 있었다. 어린 시절 노란 봄날을 함께 보내고, 어느 날 밤 사라져 버린 강아지 똘똘이. 『강이』를 받아들었을 때 표지 속 강이의 모습에서 똘똘이를 떠올렸다. 텅 빈 똘똘이의 집을 보며 몇 날 며칠 텅 빈 동네 골목길을 헤맸던 기억이 났다. 똘똘이는 어린 내가 떠나보냈던 첫 번째 존재였다. 


똘똘이가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게 되었다면 강이처럼 배고프고 목말랐을까? 그러다 아랫집 언니를 만났을까? 한 장 한 장 넘기며 나는 강이 속에서 똘똘이를 본다. 강이는 ‘번개’와 ‘천둥’, ‘구름’이 사는 곳에서 ‘산’과 ‘바다’를 만났다. 그리고 ‘강’이 된다.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 다소곳한 모습의 강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깊고 검은 눈 속의 작은 눈빛이 멀리서 그윽하게 다가온다. 여러분도 그 눈빛을 꼭 발견했으면 좋겠다.    


함께 있는 평화롭고 배부르고 시원한 시간, 심심하지 않은 강이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림자와 함께 뛰고, 나무꾼이 되고, 사냥꾼이 되고, 배구 선수가, 멋진 모델이 되기도 한다. 향기로운 꽃들에 누워 오월의 신부도 되어 본다! 눈이 내리면 피겨스케이팅 선수, 뽀드득뽀드득 눈 소리와 함께 걷다가도, 쌩쌩 눈썰매를 몬다. 눈 맛도 날름날름 맛보고, 눈 천사도 사락사락, 산과 바다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강이가 가득한 세상이었으니까. 강이도 산과 바다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었으니까.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 힘이 빠진 모습의 강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깊고 검은 눈 속의 작은 눈빛이 멀어져간다. 항상 멀리 있는 구름처럼 아주 멀리. 점점 꺼져가는 강이의 몸, 점점 희미해져 가는 강이의 마음, 강이의 눈은 오늘도 산과 바다를 벌써 마중 나와 있다.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지만 허전하다. 그림자가 길어지도록 밤이 까맣게 내리도록 강이는 산과 바다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러다 때가 되었다. 산과 바다는 오지 않았는데, 강이의 시간이 먼저 찾아왔다. 하늘의 눈으로, 들판의 눈으로, 가만히 강이를 찾아왔다. 강이는 달렸다. 계속 달렸다. 그리고 알았다. 하늘의 눈 속으로, 들판의 눈 속으로, 산과 바다가 오고 있다는 걸.


아, 다행이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똘똘이도 강이처럼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찾아가기를. 노란 봄빛으로 살랑 하늘빛으로 다시 만나기를. 이수지 작가의 ‘첫눈처럼 왔던 강이에게’라는 헌사가 내게는 ‘노란 봄날처럼 왔던 똘똘이’에게로 다시 읽힌다. 산과 바다에게도 이 마음을 전한다. 나도 똘똘이를 만나러 간다고!



신혜은_경동대 유아교육과 교수, 그림책 심리학자


이 콘텐츠는 <초등아침독서> 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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