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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11. 2022

작은 서점에서 읽고, 쓰고, 사유하다

동네서점 상주작가,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이야기

청소년 시절, 내 고향 고창 읍내에는 서점이 두 곳 있었다. 당시 책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은 공공도서관과 서점뿐이었다. 공공도서관은 독서실에 가까운 기능을 하는 곳이라 주로 시험을 앞두고 찾았다. 공공도서관에 왜 열람실이 있어야 하는 걸까? 도서관은 명칭 그대로 책을 만나러 오는 곳이어야 한다. 해외여행을 떠나면 나는 서점과 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여행 중 만난 대부분의 도서관엔 열람실이 없었다. 


읍내의 서점은 위치가 좋은 오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서점의 책장 사이를 서성일 때 나는 낯선 세계의 순례자였다. 그곳에서 시인과 소설가와 작가 들을 만났다. 헤르만 헤세의 작가 소개 글에서 그가 서점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고 서점에서 일하는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훗날 나는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어느 인터넷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인터넷서점이 규모를 키우며 작은 서점들, 지역의 서점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동네 입구의 작은 구멍가게들이 그랬듯 고창 읍내의 서점도 문을 닫았다. 서점이 있던 오거리엔 카페 몇 곳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각지에 작은 서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느린 속도로. 어떤 서점은 그림책을 전시했고, 어떤 곳은 인문학서점을 표방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들이 늘자, 독자들은 온라인서점과 달리 책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동네서점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참여해 서점 근무를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읍내의 서점에서 상상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사업은 작가들과 작은 서점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작가회의에서 기획했다. 작가는 서점과 노동계약을 맺고 문학 코디네이터로서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나에게 이 사업은 여러모로 매력적이었다. 일자리가 생긴 것과 아울러 집필실이 생겼다. 직장인에게 회사가 필요하듯 작가들에겐 집필실이 필요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대부분의 작가들은 집필실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카페나 도서관에서 글을 쓴다. 

도서관 열람실은 시험 준비를 하는 이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나는 주로 카페를 이용하였다. 홍대 인근엔 작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몇 곳의 카페가 있다. 여느 작가들처럼 나도 이 카페 저 카페를 떠돌았다. 인기 많은 카페는 고객이 많아 소음 때문에 글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사람 드문 카페는 글 쓰는 공간으로 적합하였지만 정들만하면 폐업을 하곤 했다. 집필실은 물론 급여도 받을 수 있고 책에 관심이 많은 이웃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상주작가로 참여한 이유이다. 


나는 전라도 광주‘검은책방 흰책방’에서 근무를 하였다. 이곳은 광주에 하나뿐인 문학전문서점으로 조선대 앞에 위치하고 있다.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은 거점서점과 두 곳의 작은서점이 함께 신청하게 되어있는데, 나는 독립책방인 ‘소년의서’ ‘사이시옷’과 함께 ‘광주, 읽고 쓰고 사유하다’라는 타이틀로 문학 프로그램을 짰다. 사이시옷은 주택가 골목에 위치해 있고, 워킹맘과 학부모가 주로 찾는 책방이어서 그림책과 동화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소년의서는 광주극장 옆에 있는 인문학서점으로 소수자 의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곳이다. 이에 맞춰 ‘서분숙 작가의 르포문학론’ ‘최규화 작가 초청 북토크’ ‘박태건 시인의 구술사로 배우는 스토리텔링’ 등을 기획했다. 


내가 근무하게 된 거점서점에서 처음 시작한 프로그램은 ‘책다방’이다. 어린 시절 서점의 기억이 떠올라 만든 독서 및 글쓰기 클리닉 프로그램이다. 그 시절 내가 서점에서 어떤 작가를 만났다면 더 넓은 책의 세계를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서 기획한 것이다. 책다방을 통해 나는 창작품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보이차 등을 대접하며 리뷰와 상담을 해주었다. 갓 스무 살이 넘은 대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시·소설·에세이·시나리오·동화·리뷰 글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사연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그 후엔 ‘저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책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책 쓰기 강좌는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강좌임에도 꽤 인기를 얻고 있었다. 나는 인터넷서점 근무 경험과 작가로서 집필 활동, 출판 협동조합을 했던 경험을 살려 무료 책 쓰기 프로그램을 열었다. 이 강좌에도 여러 연령층이 참여했다. 한때 문학소녀였던 중년의 여성, 작가로서 재능을 확인하고 싶은 스물 초반의 학생도 찾아왔다. 



강좌를 마칠 무렵 어떤 이는 서점을 하고 싶다고 했고, 어떤 이는 작가가 되어 자신의 책을 펴내고 싶다고 했다. 또 노년에 이른 어떤 이는 일기를 쓰듯 매일 글을 쓰며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 후 책을 함께 읽는 독서모임을 만들고 낭독회를 열었다. 

작은서점 상주작가를 하며 덤으로 얻은 것은 이웃이다. 서울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만남의 폭이 넓지 않아서인지 사교성이 없어서인지 교류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여러 명의 이웃이 생긴 것이다. 


7개월에 걸친 사업을 마친 후 각지에서 서점을 중심으로 여러 동아리가 생겨났다. 큰 장소가 아닌 작은 서점이기에, 동네에 위치한 서점에서 만난 인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점은 단지 책을 파는 곳에 머무는 곳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람이 모이는 사랑방이 되고 있다. 

작은서점 상주작가 지원사업은 코로나 재난으로 인한 어려움에도 여러 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독자들을 서점으로 불러들였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주민 들이 만날 수 있게 해줬다. 사업 기간 동안 생계에 덜 쫓기게 된 작가들은 보다 안정적인 경제적 공간적 환경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이 기간 한 권의 책을 집필했고, 두 편의 글을 문학잡지에 발표하였다. 


어린 시절 나에게 서점은 상상의 공간이면서 낯선 세계를 만나는 곳이었다. 상주작가로서 보낸 7개월은 잃어버린 그 세계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송기역_작가, 『한 아이도 놓칠 수 없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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