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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22. 2022

조금 달라도, 천천히 해도 “괜찮아”

수영장 가는 날 

염혜원 글·그림 / 48쪽 / 13,000원 / 창비



아이는 토요일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 수영장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수영장 가는 날』은 아이가 수영 수업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해가는 이야기다.


차갑고 미끄러운 타일 바닥, 높은 천장, 호루라기 소리, 소독약 냄새와 울리는 소리…. 커다란 수영장에 달달 떨면서 들어가던 어린 시절은 맨발에 발가벗은 느낌처럼 냄새, 소리, 맛까지 기억이 난다. 한참을 잊고 있던 기억이 아이들을 매주 토요일 수영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다시 떠올랐다. 소독약 냄새, 하늘빛 수영장 물, 미끄러운 타일 바닥, 모두 그대로였다. 다만 내 아이들은 전혀 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에 신나게 뛰어드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어린 시절의 난 조금 불안한 아이였던 것 같다. 수영을 처음 배우던 당시 항상 손가락을 빨아서 손톱이 하나 빠졌는데, 매주 수영장에 가는 버스 안에서 손톱 없는 손가락을 들여다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책은 “토요일 아침이었어. 나는 일어나자마자 배가 너무 아팠어”로 시작된다. 실제로 체육 시간이 있는 날마다 배가 아팠는데 이건 꾀병이란 이름으로 진단해서 꿀밤으로 치료될 문제는 절대 아니었다. 지금도 남들 앞에 나서야 할 일이 있으면 배가 아픈데, 아직 완치가 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주인공 아이는 조금 더 따뜻한 어른이 도와줬으면 했다. 내 어릴 적 수영 선생님은 수영장 밖으로 나오려 하면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로 자꾸만 밀어 넣었고, 그런 방식은 내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수영장 가는 날 배가 좀더 아팠을 뿐이었다. 책에 나오는 어른들은 아이에게 스스로 극복할 시간을 주는 사람이다. 영어로 쓴 원문에서 수영 선생님 이름은 메리인데 아이의 유아원 선생님 이름이다. 엄마가 되어서도 불안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내게 메리는 자신도 그랬다며 그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매일 교단에서 30년간 이야기한 그녀도 그랬다고 하니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이상하게도 정말 괜찮을 것만 같았다. 우리 모두 메리의 공감이 필요하다. 막대기 말고.



나는 결국 수영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머리를 물에 집어넣을 필요가 없는 배영을 배우고 나서였다. 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물에 처음 떴을 때 조용해졌던 수영장, 누워서 보던 천장 불빛과 깃발의 모양은 그동안 어푸어푸하며 발을 차던 때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저 몸만 뒤집었을 뿐인데! 왜 진작 이런 것부터 가르쳐주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물속에서 마음이 편해지자 수영장 가는 게 두렵지 않아졌다. 심지어 대학생 때는 물가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엄마와 수영을 함께 배우러 다녔다. 이번에는 내가 엄마한테 괜찮다고 말해주면서…. 엄마는 이제 수영을 잘하신다. 정말 멋진 일이다. 엄마도 물속에 가만히 누워 조용한 수영장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배영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기쁘다.



그림을 그리면서 신경 썼던 부분은 물이었다. 투명한 하늘빛 물과 알록달록한 수영복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물에 잠긴 부분과 물 바깥에 있는 부분에 차이를 주고 싶었다. 먼저 수채화 물감으로 수영장 부분을 칠했다. 색연필로는 나머지 부분을 칠해서 파란 수채화 물감으로 칠한 부분과 아닌 부분의 경계가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다음으로 크게 신경 썼던 부분은 수영장에서 같이 배우는 아이들을 모두 다르게 표현하기였다. 브루클린에 살고 있어서 수영장에 가면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다 같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참 예뻐 보였다. 어떤 아이는 겁이 많고, 어떤 아이는 대범하고 의연한 것처럼 생김새도 모두 다르게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마다 캐릭터를 정하고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제각각 스토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렸다. 그중 한 아이는 내 아이다. 모두가 다 달라도 괜찮다는 것을 그림으로 이야기하려 했다. 아이는 머리가 검은색이지만 엄마는 금발로 그린 것도 가족이 모두 같은 모습은 아니어도 됨을 살짝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질책이나 채근 없이 아이가 스스로 자라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어른이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손을 내밀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런 어른이고 싶다. 물론 정말 힘든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 달라도, 조금 느려도 괜찮은 그런 세상을 꿈꾼다. 적어도 책 안의 세상은 그런 세상이어서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염혜원 작가는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쓰고 그립니다. 『어젯밤에 뭐했니?』로 볼로냐 라가치 픽션 부분 우수상을, 『야호! 오늘은 유치원 가는 날』로 에즈라 잭 키츠 상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 『쌍둥이는 너무 좋아』 『우리는 쌍둥이 언니』를 쓰고 그렸고, 『나는 자라요』 『너무너무 무서울 때 읽는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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